사회 사회일반

[안현덕 기자의 LawStory]중고거래·몸캠·조건만남까지 진화하는 ‘그놈 목소리’

檢 전달·공급책 등 4명 구속…사기, 공갈 혐의

휴대전화기 싸게 판다…은밀한 만남 등 ‘유혹’

입금 안 됐다거나, 먹튀 예방 보증금 달라 요구

진화하는 범죄에 檢 등 합수단 설립…외국 파견

전문가, 협약·조약 통한 해외 공조 수사 ‘필요’

자칫 줄기 커녕 가지만 치는 반쪽 짜리 수사 전락

농협상호금융과 경찰청, 금융감독원이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지난 2019년 10월 1일 공동 주최한 '전기통신 금융사기(보이스피싱)-대포통장 근절'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농협상호금융과 경찰청, 금융감독원이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지난 2019년 10월 1일 공동 주최한 '전기통신 금융사기(보이스피싱)-대포통장 근절'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보이스피싱 범죄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연간 피해액이 최근 5년새 3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보이스피싱 범죄는 검찰 검사·수사관이나 금융감독원 직원 등을 사칭한 콜센터직원이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등 말로 꾀어 피해자로 하여금 예금을 인출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고거래는 물론 조건만남, 몸캠 등까지 범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금액도 전체 예금을 빼가는 데서 소액 입금을 유도하는 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른바 ‘티끌모아 태산식’이다. 특히 중국 등 현지 총책이 관리하를 콜센터와 대포통장 공급자(일명 장집), 환전상(보이스피싱 피해금원 세탁), 현금수거책까지 보이스피싱 일당이 국내외에서 점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다 수법도 날이 갈수록 전문·지능화되고 있다. 국내 사정기관이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을 꾸리는 등 엄정 대처 채비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국제 공조 강화가 우선 필요하다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경찰이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불법 통신 중계소.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번호를 ‘010’으로 바꿔주는 장비 등으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인 30대 A씨 등 운영책 15명을 입건해 이 중 12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수원=연합뉴스경찰이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불법 통신 중계소.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번호를 ‘010’으로 바꿔주는 장비 등으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인 30대 A씨 등 운영책 15명을 입건해 이 중 12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수원=연합뉴스


◇은밀 만남·할인가까지…피해자 꾀는 수법도 다양=보이스피싱 범죄가 지능화되며 일반인 삶 속으로 침투하고 있는 건 최근 한 지방소재 검찰청에서 수사한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해당 지검은 최근 보이스피싱에 연루된 A씨 등 4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국내 현금전달·수거책으로 사기, 공갈 등 혐의가 적용됐다. 이들 일당이 범행 통로로 악용한 건 중고거래·채팅 어플리케이션(앱)이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최신 휴대전화기를 80만원에 판다’고 접근한 뒤 ‘입금이 안 됐으니, 다시 보내라’며 수회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돈을 받아 제3의 통장으로 빼돌리는 방식이었다. 또 ‘○○○ 안심거래이니 잘못 입금된 금액은 돌려준다’는 말로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몸캠이나 조건만남도 이들 일당이 주로 피해자들을 꾀어낸 범죄 방식이었다. 또 모바일상으로 ‘은밀한(?) 만남을 하자’는 식으로 접근했다. 조건만남의 경우 성관계만 맺고, 돈을 주지 않는 이른바 ‘먹튀’를 방지해야 한다며 ‘보증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30만~100만원가량이 입금되면 연락을 끊었다. 몸캠은 주로 채팅앱에서 음란한 내용의 쪽지를 보내 접근했다. 응한 남성이 음란 행위를 하는 장면이 녹화되면 곧바로 ‘지인들에게 영상을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이들 일당이 중고거래·채팅 사이트에서 피해자들로부터 빼돌린 자금만 2억여원. 단 2개월 만에 갈취한 금액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 일당들은 점 조직 형태로 활동한다”며 “최근 구속한 피의자들조차 서로가 누군지 모를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에서 주로 쓰는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윗선에서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며 “중국 등 현지 총책부터 콜센터직원, 현급 수거책까지 업무를 분담하고 있어 윗선 수사가 이뤄져야 보이스피싱 범죄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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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현 전주지검장)이 지난 6월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을 위한 정부 합동수사단 출범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현 전주지검장)이 지난 6월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을 위한 정부 합동수사단 출범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檢 등 합수단 설립…현지 파견 등 대처=국내 사정 기관도 합수단을 설립하는 등 엄정 대처한다는 방침이다. 대검찰청은 경찰청·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함께 합수단을 구성해 서울동부지검에 설치하고 단속을 시작할 예정이다. 1년 동안 운영한 뒤 추후 운영방향을 결정한다. 또 국제 수사 공조를 위해 이달 중 필리핀 등지에 수사관 1명을 파견한다. 이에 따라 필리핀에서 국제 수사 공조를 위해 파견되는 검찰 수사관은 2명으로 늘었다. 대검 반부패·강력부는 중국 등에 수사관을 파견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직접 수사보다는 현지 수사 기관과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공조 수사를 요청하는 차원에서다.

검찰 등 국내 사정기관이 보이스피싱 범죄 발본원색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배경에는 급증하는 피해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가 국내에 처음 신고 된 건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면서 피해액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2017년 2470억원에서 지난해 7744억원으로 증가하는 등 최근 5년새 피해금액이 3배나 뛸 정도다. 하지만 검거된 가담자 숫자는 감소하는 추세다. 보이스피싱 범죄자 검거는 2017년 2만5000여명에서 2019년 4만8000여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3만9000여명으로 또 지난해에는 2만6000여명으로 줄었다.

◇국제 공조…발본색원 ‘필요충분조건’=다만 전문가들은 합수단 설립 등과 함께 국제 공조의 기틀이 갖춰져야만 보이스피싱 범죄를 뿌리뽑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들이 대부분 총책 등 윗선은 해외에서 지시하고, 이를 국내 조직원들이 따르는 구조라는 이유에서다. 해외 수사기관과 협조 없이는 사실상 총책 등 핵심 피의자에 대한 신병확보가 불가능해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 말 그대로 ‘잔가지만 치고, 줄기는 그대로 남는’ 반쪽짜리 수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광민 법무법인 세종 경찰수사대응팀 파트너 변호사는 “외국에 거주하는 총책 등 윗선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 수사 기관에 수사를 요청하거나, 협의를 거쳐 공동 수사할 수 있다”며 “이는 법적으로 해당 국가와 협약이나 조약 체결 등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국가 이익이나 자국민 보호 측면에서는 쉽지 않다”며 “조약·협약을 체결하더라도 현지에서 수사 등 구체적으로 실천이 이뤄지기에는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공권력이 국가에 귀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입장 차가 클 수 있는 만큼 해외 공조에 국내 사정기관이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아울러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금 인출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나 송금에 있어 금액별로 돈이 빠져나가는 데 일정 시간 시간을 설정한다면, 계좌 동결 등 범죄 예방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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