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발인 왼발을 다쳤으면 높이뛰기 선수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상혁(26·국군체육대회)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발을 다쳤다. 달리기를 좋아했던 소년에게는 크나큰 아픔이었다. 오른발(265mm)이 왼발(275mm)보다 작은 후유증도 따라왔다. 그가 달리기를 접고 높이뛰기 선수로 전향한 이유다.
높이뛰기 선수에게도 짝발은 극복의 대상이었다. 발 크기가 다르니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우상혁은 “균형감을 유지하는 훈련을 많이 했다”며 “균형을 잡으니 높이뛰기에는 짝발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188cm의 비교적 작은 키도 높이뛰기 선수에게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다른 상위권 선수들의 키는 대부분 190cm를 넘는다. 하지만 짝발을 극복한 것처럼 노력으로 뛰어넘었다. ‘우상’ 스테판 홀름(스웨덴)을 떠올리며 피나는 노력을 했다. 홀름은 우상혁보다 작은 181cm의 키로도 2m40을 뛰어 세계를 제패했다. 우상혁은 “작은 키로도 성공한 선수가 많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상혁의 말처럼 노력은 배반하지 않았다. 19일(한국 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우상혁은 2m35로 은메달을 따내 한국 육상에 새 역사를 썼다. 2011년 대구 대회 남자 경보 김현섭이 달성한 3위를 넘어 한국 육상 사상 최고 순위다. 더 나아가 한국 선수 중 실외 경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도 김현섭 이후 두 번째다.
우상혁은 결선에 출전한 13명 중 가장 먼저 주로에 섰다. 2m19를 1차 시기에 넘고 ‘스마일 점퍼’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뽀빠이 세리머니’를 펼쳤다. 2m24도 1차 시기로 가볍게 넘긴 그는 카메라 앞에서 짧은 댄스 세리머니를 펼친 뒤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2m27과 2m30도 1차 시기로 충분했다.
첫 위기는 2m33에서 찾아왔다. 1차 시기와 2차 시기에서 바를 건드려 탈락 위기에 몰린 우상혁은 김도균 한국육상수직도약 대표팀 코치와 짧은 대화 후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3차 시기에서 완벽한 자세로 2m33를 넘었다. 2m35도 1차 시기는 실패했지만 2차 시기에서 바를 넘으며 포효했다.
지난해 도쿄 올림픽에서 바심과 공동 1위를 차지한 장마르코 탬베리(30·이탈리아)는 2m33에서 도전을 멈춰 4위에 머물렀다. 안드리 프로첸코(34·우크라이나)의 기록도 2m33이었지만 성공 시기에서 앞선 프로첸코가 동메달을 땄다.
2m37의 바를 앞에 두고 남은 선수는 우상혁과 현역 최고 점퍼 무타즈 에사 바심(31·카타르) 둘뿐이었다. 우상혁이 2m37을 1차 시기에 실패한 가운데 바심은 단번에 성공했다. 2m36이 최고 기록인 우상혁은 금메달 도전을 위해 2m37을 패스하고 2m39 바 앞에 섰다. 하지만 한 번도 넘지 못한 2m39의 벽은 높았고 두 번의 시기 모두 실패하며 은메달을 확정 지었다.
비록 목표했던 금메달에는 실패했지만 은메달도 한국 육상 역사에는 의미 있는 결과였다. 한국인 최초의 세계실내육상선수권 우승, 다이아몬드리그 우승에 이어 세계실외육상선수권 첫 은메달로 한국 육상 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김과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우상혁 역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기분이 정말 좋다”고 소감을 밝힌 뒤 “세계선수권, 올림픽이 남았다. 더 노력해서 더 역사적인 날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