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최근 2년 동안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로 보낸 국방부 예산이 두 번 다 퇴짜를 맞았습니다. 많아서가 아니라 ‘적어서’입니다. 행정부가 보낸 예산을 의회가 깎는 게 아니라 돈을 좀 팍팍 쓰라고 주문 하는 건데요.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의 군사적 굴기가 미국의 위기감을 높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다른 주요7개국(G7) 국가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전 세계가 군비 경쟁에 나서는 신(新) 냉전이 도래하며, 방위산업 역시 초호황기를 맞고 있습니다.
2023년 회계연도에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요청한 펜타곤, 즉 국방부 예산이 약 7,730억 달러입니다. 그런데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여기에 무려 450억 달러를 추가한 8,170억 달러를 승인했습니다. 물론 이 예산은 하원과 다시 조정을 거쳐야 최종안이 나오는데요, 하원 역시 기존 바이든 정부 예산보다 370억 달러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좀더 피부에 와닿을텐데요. 8,170억 달러라고 하면 현재 환율로 1,070조원 가량이 됩니다. 미 국방부 예산 1,000조 시대가 열리는 셈입니다. 이게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랑 맞먹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기존에 요청한 국방부 예산은 이미 전년 대비 4.1%가 늘어난 건데요.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과의 군비 경쟁 심화 등을 고려한 국방력 강화가 이미 반영됐습니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이마저도 모자라다고 본겁니다. 특히 8~9% 달하는 인플레이션 지수가 이번 증액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시다시피 6월 미국 소비자 물가는 무려 9.1%가 올랐습니다.
원래 미국에서 민주당 정부는 국방비를 줄이고 복지 예산을 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공화당 정부는 그 반대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초에는 국방비를 동결하고 기후변화, 의료 보건, 교육비 등의 예산에 무게를 뒀습니다. 트럼프 정부 때의 예산안에서 완전히 방향을 튼 겁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걸 바꿔놨습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이 현실화 된 겁니다.
현재 미국 정치 구도상으로도 국방 예산은 쉽게 동결하거나 줄일 수 가 없는 구조인데요. 상원이 50대 50이다 보니 국방비 증액을 원하는 공화당의 입맛을 맞추지 않고는 예산안 통과가 어렵습니다. 공화당과 미국의 보수 언론들 사이에서는 현재 GDP의 3% 수준인 국방예산을 5~6%까지 올려야 비로소 미국이 다시 중국과 러시아를 압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번에 의회에서 제출한 국방부 예산을 보면요. 미국 상하원에서 모두 핵 탑제가 가능한 잠수함 발사 순항 미사일 이른바 Nuclear-Armed Sea-Launched Cruise Missile (SLCM-N)에다가 예산을 배정한 것도 아주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미국이 이미 충분한 핵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 순항 미사일 개발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미국 의회에서는 “그럴 때가 아니다 계속 개발해라” 이런 메시지를 보낸 셈입니다.
자 그러면 이게 미국만의 움직임일까요. 아닙니다. 유럽과 일본도 불꽃이 튀깁니다. 최근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사실상 물러나기로 했는데요. 이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영국의 국방비 증액은 향후 총리 선출에서 주요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에 내년 예산을 두고 ‘워 이코노미(War economy)’ 즉 전쟁 경제라고 밝혔는데요. 일단 현재 GDP 대비 1.9% 수준인 국방 예산을 나토의 목표인 2% 이상으로 맞출 예정이구요
동시에 유럽의 군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강하고 다양한 방위산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 방위산업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유럽 자체적으로 전투기와 첨단 무기 등을 제작하는 방위산업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겁니다.
자 가까이 돌아보면 또 일본이 있는데요. 일본의 움직임은 우리가 굉장히 주시해볼 만 합니다. 최근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충격적인 총격 사건으로 사망하고 이어 이틀만에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했는데요.
안보적 차원에서 예상 가능한 일본의 두가지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위대의 존립 근거를 헌법에 명기(9조 2항 군대 불보유 조항 수정 또는 삭제)하는 거구요. 두 번째는 현재 GDP의 1% 수준인 방위비를 점진적으로 2%까지 증액하는 겁니다.
만약 기시다 총리가 개헌에 성공해서 일본 헌법의 9조 2항 ‘군대 불보유’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면 자위대의 위헌 논란이 해소되구요. 일본의 방위비 증액과 군사력 강화 역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 이렇게 세계적인 군비 경쟁이 벌어지면서 방위산업 역시 초호황기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남몰래 웃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노스롭 그루먼, 제너럴 다이나믹스 등 세계 5대 방위산업체가 모두 미국 기업입니다.
최근 유럽이 군비 강화에 나서면서 록히드 마틴의 전투기 수요는 크게 늘고 있는데요. 독일 같은 경우 노후된 토네이도 전투기 교체를 위해 F-35 전투기를 주문했구요. 2026년부터 인도될 예정입니다.
레이시온 같은 경우는 미국 정부에 비행기 잡는 대공 미사일이죠. 스팅어 미사일을 공급하는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미국이 이 스팅어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대거 지원하면서 현재 미국 재고가 소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군대를 다시 중무장하는 건 강대국들 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와 인접한 유럽 국가들 역시 위기감이 상당합니다. 이들이 미국산 무기를 대거 사들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는 최근 에스토니아에 5억 달러 규모의 M142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및 관련 장비를 제공하는 해외무기판매(FMS)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M142 HIMARS는 최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다련장로켓시스템(MLRS)입니다. 로켓 사거리가 70여km에 달하고 한 번에 정밀 유도 로켓 6발을 발사할 수 있는 막강한 무기입니다. 미국은 또 비슷한 시기 북유럽의 노르웨이에 9억5천만 달러 규모의 첨단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AMRAAM) 및 관련 장비를 공급하는 판매 계획도 승인했습니다.
자 이렇게 서방 진영의 군비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중국이 가만있을 리가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의 국방비를 GDP의 2% 수준까지 올리고 무기 체계를 완전히 첨단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수년 후 대만에서의 분쟁까지 내다본 움직임일 수 있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은 강대국들의 총성없는 전쟁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