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운용하는 정책금융기관인 한국성장금융이 핵심 인력들의 이탈이 잇따르면서 뉴딜 정책펀드 등의 출자와 운용을 놓고도 부실이 우려된다. 지난해 청와대 출신 인사의 낙하산 논란 이후 급격히 흔들려온 성장금융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는 운용 자산 및 사업 축소까지 거론돼 임직원들의 불안이 큰 상태다. 정책금융기관으로 성장금융이 본래 위상을 되찾으려면 하루빨리 새 리더십을 구축하고 신규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성장금융 투자운용1본부를 이끌던 황인정 본부장이 퇴사를 결정하고 다음 달 신기술 금융회사인 ‘씨앤씨아이파트너스’ 대표로 자리를 옮긴다. 지난해 말 투자운용본부장으로 선임된 지 약 9개월 만이다.
한국성장금융이 2016년 출범한 후 임원급인 본부장이 시중 운용사로 곧장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라 사내외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황 본부장은 설립부터 함께하면서 6년간 주요 요직을 거치며 성장금융을 국내 대표 ‘모펀드(Fund of Funds)’ 운용기관으로 키우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앞서 성장금융의 원년 멤버로 팀장을 맡고 있던 한 중간 간부도 지난달 민간 벤처캐피털(VC)로 자리를 옮겼는가 하면 지난해 10월과 올 초에도 잇따라 중견 운영역 2명이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VC로 떠났다.
성장금융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출범부터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고참 운용역들이 이직한 데 이어 임원급 본부장까지 퇴사를 결정해 임직원들의 허탈감이 큰 것으로 안다” 며 “투자운용1본부는 한국성장금융의 모체라고 볼 수 있고 최근 핀테크 혁신과 반도체 성장을 위한 모펀드를 운용해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출범 6년을 맞은 한국성장금융이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은 지난해 9월 전문성도 없는 청와대의 전 행정관 출신 인사가 낙하산 임원으로 내려 오려다 여론의 비판에 막힌 후 후폭풍과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당시 낙하산 인사는 무산됐으나 전문성이 중요한 정책금융기관이 정치권의 외풍에 흔들리자 운용역들이 하나둘 회사를 등진 것이다.
금융 당국이 늦게나마 자산운용 전문가를 새 기관장으로 뽑아 수습하려 했지만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가 지난해 낙하산 인사가 재연될 우려에 인사 절차 중단을 압박해 새 대표 선임은 연기됐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 당시 선임된 성기홍 성장금융 대표가 3월 말 임기가 끝났는데도 계속 자리를 지키며 어정쩡하게 4개월째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어 성장금융이 주도하는 뉴딜펀드 규모가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흉흉한 관측만 나오고 있다.
성장금융의 한 관계자는 “정치 바람에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 팀장급 이상 중 이직을 고민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렵다”며 “출범 당시부터 있던 전문 인력 대부분이 퇴사해 설립 이후 최대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성장금융이 신임 대표를 뽑는 절차를 재개해 새 리더십을 조기에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에 힘이 실린다. 3월 성장금융은 사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꾸려 시장 전문가 3인을 새 대표 후보로 압축한 후 최종 1명을 이사회가 결정하기 직전 해당 안건이 보류된 바 있다. 당시 후보 3명은 허성무 전 과학기술인공제회 자산운용본부장, 강신우 스틱인베스트먼트(026890) 전문위원, 김병철 전 신한금융투자 사장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