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경 금융통화위원이 지난달 사상 첫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배경에 대해 성장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고물가 고착화를 막고 한미 금리 역전 시기를 늦추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하지만 성장률이 떨어지고 물가가 몇 달 내 고점을 지난다면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27일 서 위원은 한은 금요강좌 대면 강의 재개를 기념해 ‘통화정책 기조변화 배경과 리스크 요인’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1995년부터 시작된 한은 금요강좌는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경제·금융을 주제로 한 경제 강좌다.
이날 서 위원은 지난달 한은 금통위가 사상 첫 빅스텝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물가 상승세가 가속된 가운데 금리 인상의 물가 파급 시차가 수개월에 이르는 점, 경제성장률이 잠재 수준을 상회하는데 물가급등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경상수지 흑자 축소, 내국인의 해외투자 확대, 외국인의 증권투자 순유출 등으로 지난해 4분기 이후 외환수급이 순유출 전환되면서 이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서 위원은 “원화 절하 압력과 외채 증가 유인을 완화하기 위해 내외금리차 빠른 역전을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에도 기대인플레이션을 통해 도출한 실질장기금리가 중립 수준을 하회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다만 올해 하반기 이후 경기 전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빠른 금리인상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형분석에 따르면 기준금리를 1.75%포인트 올리면 연간 경제성장률은 0.4%포인트 낮아지는 영향을 받는다.
물가상승률은 당분간 6%를 상회하다가 3분기 고점을 보이고 서서히 하락할 것으로 봤다. 내년에도 물가상승률이 3%를 넘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겨울철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다면 물가 고점은 뒤로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민간부채가 고소득, 고신용 차주 중심으로 늘어난 점을 고려하면 금리 상승에 따른 금융시스템 리스크는 크지 않은 것으로 전망했다.
서 위원은 “앞으로 수요 공급의 다중충격이 상호작용하면서 인플레이션의 높은 지속성이 예상된다”라며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화정책긴축을 중단할 경우 추후에 인플레이션 재발로 더 큰 폭의 금리 인상과 성장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역사적 경험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금리 인상 속도는 하반기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소폭 상회하고 물가상승률이 수개월 내 고점을 지나 점차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 점진적인 인상 경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라며 “다만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는 동시에 성장 하방 압력이 확대되면서 성장·물가의 ‘상충관계(트레이드 오프·trade off)’ 관계가 심화된다면 정책 결정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