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외국인도 대기업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데 미국이 ‘강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국적인 김범석(사진) 쿠팡 의장이 내년 5월 총수로 지정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으로 통상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본지 5월 18일자 10면, 7월 25일자 8면 참조
28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머리사 라고 미국 상무부 차관은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개최한 한미정상회담 실무회의에서 김 의장의 총수 지정과 관련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해당 소식통은 “라고 차관이 박진 당시 대표 단장에게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를 회의 우선 안건으로 올리자고 강하게 요구했다”며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면 한미 FTA 위반으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미국 무역대표부(USTR) 이의 제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외국인도 대기업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이르면 내주 입법 예고한다. 동일인 지정 기준을 마련해 김 의장과 같은 ‘한국계 외국 국적 보유 자연인’도 총수로 지정하기 위한 조치다. 미국이 이와 관련해 우려를 표명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4월 한미정책협의단 방미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총수는 사익 편취 등 각종 규제의 기준이 된다. 김 의장이 총수로 지정되면 지정 자료 제출 의무가 생겨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현황을 보고해야 하고 자료 허위·누락 제출이 발견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문제는 미국 국적인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했을 때 한미 FTA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한미 FTA는 ‘미국인 투자자가 제3국 투자자에 비해 불리한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특히 에쓰오일과 비교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아람코가 에쓰오일 지분 63.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아람코 지분 90% 이상을 보유했지만 공정위는 에쓰오일 한국 법인을 총수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통상 규범상 총수 지정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 자산 규모에 따라 대기업집단과 총수를 지정해 규제를 부과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달의민족(배민)이 대기업집단 기준을 충족하면 배민을 인수한 독일 딜리버리히어로 창업자들도 총수로 지정될 판”이라며 “가뜩이나 한국은 규제가 많아 외국인 기업과 투자기관의 투자를 독려하기 어려운데 외국인 총수가 지정되면 외국인들이 투자를 더 꺼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