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까지 나온 넷플릭스 인기콘텐츠 '마블 데어데블'에는 마블 시리즈 중 유일하게 맹인 슈퍼 히어로가 등장한다. 사실 데어데블은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아니다. 트럭에 치이려는 시각장애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방사능 물질이 눈에 들어가 그대로 실명하게 됐는데, 해당 사건 이후 초감감 능력을 얻었다. 특히 멀리 있는 사람의 심장박동은 느끼는 것은 물론 거짓말을 하는지 여부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청각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슈퍼 히어로 만큼은 아니지만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비시각 장애인보다 청각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청각처리 능력이 발달한 인체 내 구체적 기전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심현준 노원을지대병원 이비인후과 심현준 교수팀은 선천성 시각장애인 23명, 비시각장애인 22명을 대상으로 이분청취능력검사?주파수 패턴검사?소음환경에서 어음인지력 검사 등을 통해 이들의 중추 청각처리 능력을 비교 분석했다.
사람의 대뇌는 중앙의 긴 홈을 기준으로 좌우 반구로 나뉜다. 신체의 모든 신경 다발이 뇌교를 지나 서로 반대 방향의 반구를 향해 간다. 좌?우측 귀로 들어온 소리는 반대편 뇌로 신호가 올라가게 된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이러한 원리에 착안해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의 중추 청각처리 능력을 살펴봤다. 먼저 양측 귀에 다른 소리가 들어올 때 인지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각각 다른 3가지 숫자를 동시에 들려주고 어떤 소리인지 맞추는 ‘이분청취능력검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비시각장애인의 경우 우측 귀(15점), 좌측 귀(12점)으로 우측 귀로 들은 소리를 더 잘 맞추는 우측 귀 우세를 보였다. 반면 시각장애인은 우측 귀(15점) 좌측 귀(16점)으로 비시각장애인보다 좌측 귀 수행능력이 훨씬 우수했다. 이는 시각장애인에서 좌측 귀와 연결된 우측 대뇌반구의 기능이 더 발달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또한 고주파수와 저주파수 두 가지 음을 무작위로 5개를 조합해 소리 패턴을 맞추는 ‘주파수 패턴검사’를 시행했다. 이 검사를 통해서는 소리의 높고 낮음을 흐밍으로 따라 하는 반응으로 소리의 패턴과 음색을 인식하는 우측 대뇌반구의 기능을 측정할 수 있다. 검사 결과 시각장애인의 경우 좌?우측 귀(15점/15점), 비시각장애인의 경우 좌?우측 귀(13점/14점) 측정값이 나왔다. 좌?우측 귀 모두 시각장애인이 더 우수한 수행력을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우측 대뇌반구가 발달했음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중추 청각처리 능력을 살펴본 결과, 선천성 시각장애인은 언어를 이해하는 역할을 하는 좌측 대뇌반구보다 소리의 패턴과 음색을 인식하는 우측 대뇌반구의 기능이 더 향상됐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오랜 시간 시각 정보가 차단되면서 대뇌가 청각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보상적으로 발달했음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것이다.
소음 크기를 5단계로 구분해 시행한 ‘소음환경에서 어음인지력’ 검사를 시행한 결과 가장 큰 소음인 ?8 dB에서만 시각장애인이 비시각장애인보다 더 뛰어난 수행력을 보였다. 뇌파검사에서도 큰 소음 상황인 ?8 dB, -4 dB에서 시각장애인의 뇌파가 비시각장애인보다 더 크게 반응했다. 적은 소음 상황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의 어음인지력 차이가 없는 이유는 언어나 문자 이해력을 담당하는 좌측 대뇌반구의 경우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에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팀의 추정이다.
심현준 교수는 “이번 연구로 장기간의 시각 상실이 우측 대뇌의 기능을 발달시킨다는 새로운 사실을 규명했다"며 "추후 시각장애인에게서 난청이 발생했을 때 차별화된 청각 재활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SCIE급 뇌과학저널인 Frontiers in Psychology 5월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