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83억 달러이다. 2021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4.4%이고 세계 순위로 보면 9위쯤 된다. 스위스 외환보유액은 명목 GDP의 129.8%이고 싱가포르가 98.6%, 대만도 65.3%나 된다. 일본도 28.2%로 우리나라보다 높다. 외환보유액 상위 10개국 중에서 명목 GDP에 대한 비중으로는 한국이 인도보다 높을 뿐이다. 대만·홍콩·사우디아라비아·스위스는 경제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작으면서도 더 큰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다.
명목 GDP에 대한 외환보유액 비중이 높은 대만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들의 환율은 매우 안정적이다. 올해 6개월 동안 대미 달러 환율 변동률을 보면 스위스가 4.5%, 대만 7.3%, 싱가포르 3.1%, 그리고 사우디는 -0.1%였다. 우리나라 원화 환율 변동률 10.9%보다 더 큰 나라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30.5%)나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는 일본 18.7%밖에 없다. 외환보유액이 더 커야 환율이 안정될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급박한 상황에서 가용할 수 없는 외화 자산이라면 아무 쓸모가 없다. ‘가용할 수 없는 자산’이라는 말은 장부상에만 존재할 뿐 동원할 수 없는 외화 자산이다. 그런 자산이 있겠나 싶지만 실제로 있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우리나라의 공식 외환보유액은 204억 1000만 달러였지만 가용 외환보유액은 88억 7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국내 은행 해외 지점에 예치해 둔 예치금은 한국은행으로서는 외환보유액이었지만 대부분이 부실자산으로 운용되면서 즉시 회수할 수 없는 자산이었던 것이다. 당시 IMF 긴급 구제금융 규모가 160억 달러였던 점에 비춰 보면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 예치금만 잘 관리했었어도 IMF 위기를 예방할 수 있었거나 혹은 IMF 구제금융 규모를 훨씬 축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운용을 잘못해서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보면 2008년 금융위기도 다르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외환보유액은 2618억 달러로 명목 GDP의 22.3%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일본에 각각 300억 달러와 200억 달러 합해서 500억 달러의 중앙은행 통화 스와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대부분 채권 중심으로 운용되면서 긴급 유동성을 조달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2007~2008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2000억 달러를 훨씬 상회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일본 및 중국 중앙은행과의 긴급 유동성 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것은 현금성 예치금의 비중이 7~8%에 불과하고 나머지 92% 이상을 국채·공채 혹은 회사채 주식 형태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만이나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나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지 않았다. 보유한 외환보유액으로 외환 유동성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는 방증이다.
이런 경험에 비춰볼 때 외환시장을 안정시키 위해서 첫째로, 명목 GDP 대비 외환보유액의 규모를 절대적으로 늘려야 한다. 현재의 24%에서 향후 20년간 40%대로 상향시켜 8000억 달러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긴급 동원이 가능한 예치금의 비중을 대폭 올려야 한다. 현재 5% 수준에서 최소한 30%, 금액으로는 2000억 달러 이상으로 올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점진적으로 자산 구성을 유가증권 중심에서 유동성 중심으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 채권의 비중은 더 높여야 한다. 현재의 60%에서 70%까지로 확대해야 한다. 특히 리스크가 큰 자산의 비중은 대폭 줄여야 하며 주식과 회사채의 경우에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외환보유액 구성 적격 자산이 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달러 표시 자산의 비중을 70% 수준에서 90% 이상으로 바꾸고 약 25% 정도인 민간 기관 위탁 운용을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