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 논단]인재 생태계 리셋 필요하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연봉·사명감만으로 일하는 시대 지나

연구자가 대학-연구기관 동시소속땐

안정된 직책으로 협력연구 시너지 등

연구환경 바꿔 과학 인재강국 거듭나야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말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 초옥을 세 번이나 찾은 것 역시 뛰어난 인재의 확보가 천하 통일을 위한 최선책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최고급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을 전공한 외국인들이 미국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이민 정책을 완화했다. 중국 또한 ‘천인계획(千人計?)’을 필두로 해외 고급 인재 유치 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에서는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인재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반면 2020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대한민국은 두뇌 유출 지수가 10점 만점에 4점으로, 63개국 중 43위로 나타났다. 글로벌 인재 쟁탈전에서 우리나라는 유입보다 유출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현재 초고령화와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구조의 역피라미드화, 인구 감소, 지방 소멸 등이 미래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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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도 최근 인재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어온 베이비붐 세대 연구자들의 은퇴가 이어지고 있고 경직된 연구 환경, 정년 단축 같은 처우 악화 등의 이유로 우수 연구자들의 이직 증가에 따른 인재 유출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공공기관 채용에서 공정성 확보 명목으로 시행되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이다.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정보가 블라인드로 처리됨으로써 지극히 제한된 정보로부터 인재를 구분해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부정한 채용을 방지하기 위한 투명성과 공정성은 유지하되 수월성과 전문성을 보다 세밀하게 검증할 수 있도록 블라인드 채용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국가 연구개발(R&D) 부문 고용 형태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세계경제포럼의 노동시장 유연성 평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25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고용 형태가 경직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독일 등에서는 연구기관과 대학의 협력을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우수 연구자는 연구기관과 대학에 동시 소속이 가능한 이중 소속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의 장점은 연구자가 대학으로 이직하지 않더라도 대학교수에 준하는 역할을 보장 받을 수 있고 대학과 연구기관의 협력 연구를 활성화시켜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대학과 연구기관 사이의 인재 유출 또는 유입에 의한 시설·장비의 중복 투자 방지 외에도 출연(연) 우수 연구자가 미래 인재 양성에도 적극 기여할 수 있게 되는 이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자에 대한 처우 개선과 자율적인 연구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얼마 전 누리호 발사 성공의 이면의 항공우주(연) 연구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처우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연봉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사명감만으로 일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연구자가 흘린 땀에 대한 합당한 대우가 필요한 시대다. 미국으로 떠나 다시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 박사들도 처우와 연구 환경을 그 첫 번째 이유로 꼽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해외의 우수한 과학자들을 우리나라로 영입하는 것은 갈수록 더더욱 불가능해질 것이다.

최근 글로벌 환경은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뉴노멀로 급속하게 리셋되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이 미래 사회를 선도할 과학기술 인재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인재 생태계를 하나하나 근본적으로 리셋해나가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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