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논란을 촉발한 ‘만 5세 취학’ 정책 추진에 대해 2일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초중고 12년 학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는데 대통령실이 나흘 만에 이를 번복한 셈이 됐다. 앞서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 제도 완화를 발표했다가 입장을 번복했던 상황이 이번 보육·교육정책 분야에서 또 반복된 것이다. 지지율이 하락하며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국정 개혁마저 혼선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는 방안에 대해 “교육부가 이에 관한 공론화를 신속하게 추진하고, 종국적으로는 국회에서 초당적 논의가 가능하도록 해달라는 게 업무 보고 때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말했다. 안 수석은 그러면서 “학교 내 돌봄 서비스를 부모의 퇴근 때까지 해주자는 게 (교육 개혁) 인식의 출발”이라며 “취학연령 하향은 이런 정책 필요성 속의 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안 수석의 이 같은 브리핑은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 보고를 받고 지시한 내용과는 결이 다르다. 교육부는 윤 대통령에게 2025년부터 4년간 단계적으로 3개월씩 취학연령을 낮추는 구체적인 방안을 보고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고 사후 브리핑을 했다.
그런데 안 수석은 이번에 다른 말을 내놓았다. 그는 “교육 개혁도 내각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크다”며 “국회 입법 사항에 해당하기에 관계자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 공론화와 숙의가 필요하니 교육부가 공론화 추진하고, 종국적으로는 국회에서 초당적 역할을 해달라는 게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취학연령 개편안을 앞서 대선 공약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를 통해 공론화한 적이 없다. 그러다가 이번에 돌연 학제개편안을 내놓고 ‘신속한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수백만의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학부모 및 전국 유치원·초등학교 교사들의 반발을 자초했다.
현 정부 출범 후 이 같은 정책 혼선이 처음은 아니다. 6월 정부는 주(週) 단위의 연장근로시간 기준을 월(月) 단위로 바꾸는 개혁 방안을 내놓았다가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그러자 윤 대통령이 직접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번복했다. 이번에 교육 개혁안을 두고도 똑같은 혼선이 또 빚어진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이날 “아무리 좋은 개혁 정책 내용이라도 국민 뜻을 거스르고 갈 수는 없다”고 밝히며 학제개편안을 철회할 여지까지 남겼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연금 개혁도 현 정부 내에서 마치기 어렵다는 뜻도 내비쳤다. 인수위는 국정과제로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 개혁’을 제시하고 △사회보장제도 통합 관리 △국민연금 지속 가능성 제고 등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안 수석은 “구조적 개혁에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선진국의 연금 개혁 사례를 고려해보면 한 정부에서 연금 개혁을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대통령실은 연금 개혁에 걸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안 수석은 “후보 토론 과정에서 주요 4당 후보 전원이 연금 개혁에 합의한 바 있다”며 “구조적 연금 개혁을 향한 초당적인 계기가 마련됐고, 국회 내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두기로 합의했다. 거기에서 구조 개혁을 시작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은 대통령실이 또 국정 개혁 과제를 두고 입장을 바꾸자 맹공을 퍼부었다. 더불어민주당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대통령 공약에도, 국정과제에도 없는 초등 만 5세 입학과 학제개편은 사회적 논의는커녕 제대로 된 계획도 준비도 없는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