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한미 경제·기술동맹 의회협력 강화"…전문직 비자쿼터 입법 탄력 기대

■한미 의회수장 회담

김진표 "韓기업에 반도체법 혜택을"

美 '칩4' 우회압박에 인센티브 요청

펠로시, 시진핑 겨냥 발언 등 자제

강경 北·中메시지 대신 실리챙겨

한인입양인 시민권·김치결의안 등

거버넌스로 포괄적동맹 폭 넓히기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국회를 방문,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한 뒤 열린 공동언론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욱 기자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국회를 방문,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한 뒤 열린 공동언론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욱 기자




김진표(오른쪽) 국회의장이 4일 오전 국회를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만나 회담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권욱 기자김진표(오른쪽) 국회의장이 4일 오전 국회를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만나 회담장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권욱 기자


김진표 국회의장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4일 공동언론발표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한미 간 안보·기술·경제 동맹 밀착 정도를 더욱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펠로시 의장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 직접 공세를 퍼부었던 대만에서와 달리 한미 동맹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에 이어 한국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북한과 중국을 향한 충분한 압박 메시지가 됐다고 평가했다. 두 의장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 등을 겨냥해 과도한 대결적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양국 간 실리를 추구했다. 양측 모두 기술·경제 동맹 강화를 지지함으로써 미국은 반도체 공급 동맹인 ‘칩4’에 대한 한국의 가입을 재차 우회적으로 촉구하는 효과를 거뒀고, 김 의장은 전문직 비자쿼터 입법화 논의 등과 같은 반대급부를 챙겼다는 분석이다.

펠로시 의장과 김 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예정된 한 시간보다 30분 이상 더 회동하며 양국의 우호를 과시했다. 회동 직후 김 의장은 공동언론발표문을 통해 “우리는 한미 동맹이 군사안보·경제·기술 동맹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면서 포괄적인 글로벌 동맹으로의 발전을 의회 차원에서 강력하게 뒷받침하기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해서 진지한 협의를 가졌다”고 밝혔다.



안보에서 경제·기술 분야로의 동맹 확대를 위해 김 의장은 전문직 비자쿼터 입법화를 전면에 꺼내 들었다. 그는 “우리 측은 미 의회가 지난해 말 ‘인프라법’에 이어서 지난달에는 ‘반도체 및 과학 지원법’을 통과시킨 점을 높이 평가하고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으로 이어지도록 미 의회 차원의 협조를 당부했다”고 소개했다. 그 단초를 마련할 수 있도록 ‘전문직 비자쿼터 입법화 방안’을 미국 측에 요청도 했다. 관련 법안은 미국의 반도체 투자 인센티브 지원 법안과 동시에 미국 의회에서 논의 중인 이른바 ‘한국동반자법’이다. 한국동반자법이 통과하면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 국적자는 연간 총 1만 5000개의 전문직 취업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특히 반도체 전문가들이 수혜를 크게 받을 것으로 보여 ‘칩4’ 참가 전 국내 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확보하겠다는 성격이 짙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입법부 차원의 회담이라는 점에서 정부 간 협력에 뒷받침이 충분히 될 것”이라며 “어느 정도 입법 절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제안할 수 없다”고 실현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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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펠로시 의장이 강조한 ‘거버넌스 분야’도 집중 논의됐다. 펠로시 의장은 “안보와 경제는 확실한(영역)이지만 거버넌스 영역은 광범위하다”며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해 공통의 가치와 지구 기후위기 등 의회 외교를 통해 논의할 것과 기회가 많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한인 입양인 시민권 부여 법안, ‘김치의 날’ 지정을 위한 김치 결의안, 베트남전 참전 미주 한인을 위한 법안 등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펠로시 의장이 밝힌 폭넓은 거버넌스 영역을 파고든 셈이다. ‘입양인시민권법안’은 미국으로 입양되고도 시민권을 얻지 못해 구직을 비롯한 일상에서 고통을 겪는 1만 9000여 명의 한인을 구제하기 위한 법이다. 대부분 양부모가 시민권 취득 절차를 잘 몰랐거나 양부모의 이혼·파양 등에 따라 시민권 없이 살아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하원을 통과한 뒤 상원과의 조율이 남아 이를 확실히 해둘 목적이 컸다. 베트남 참전 한인 미 시민권자에게 미군 참전용사와 동등한 보훈 의료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미주 한인 베트남전 참전용사 보훈법안’도 하원에 계류 중인 상황을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무엇보다 양측은 내년이 한미동맹 70주년임을 상기하고 70주년 기념 결의안 채택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김 의장은 “우리는 북한·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협의했다”며 “양측은 북한의 위협 수위가 높아가는 엄중한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우리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강력하고 확장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국제 협력 및 외교적 대화를 통해 실질적인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이루기 위한 양국 정부의 노력을 지원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대만 문제나 북한 인권 문제를 ‘로키’로 가면서도 북한 비핵화 문제에 억제력 강화를 분명히 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됐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들려 한국에 바로 온 자체가 메시지가 있다”며 “북핵 문제 등에서 한국의 안보 상황은 미국이 확실하게 지원한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펠로시 의장은 “한미 동맹은 특별하다”며 문화적 가치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15년 당시 미국 의회에서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설명한 펠로시 의장은 “위안부 여성 처우를 규탄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 관계자들과 의견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다음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펠로시 의장으로서는 한일 관계 역시 한미 관계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역사적 상처를 해소하고 한미일 동맹 강화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회담 뒤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오찬은 한우 갈비 양념구이, 비빔밥, 궁중 신선로 등 한식 코스 요리로 꾸려졌다. 펠로시 의장은 국회 방문 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오산 미 공군기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했다.


송종호 기자·박경은 기자·주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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