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커다란 포스터가 눈에 띈다. ‘식당 창업? 일단 스톱(STOP)!’ 분명 음식점 창업 인큐베이팅을 하는 곳이라 들었는데 창업을 하지 말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써 있다니…. 도대체 식당을 하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
서울 녹번동 사무실에서 유지상(61·사진) 위너셰프 대표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뜻을 알 수 있었다. 음식 칼럼니스트인 유 대표는 한 방송사의 한식 경연 대회 심사 위원으로 참석해 유명해진 바 있다. 그가 음식점 창업 인큐베이팅에 뛰어든 것은 ‘성공한 외식점’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망하려면 여기서 망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고 외식 산업에 부나방처럼 뛰어듭니다. 이 중 90%는 1년 안에 망하죠. 투자비·시간 다 날리고 나면 사람이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정이 파탄 나기도 하죠. 이런 일을 막자는 것이 이곳의 목적입니다.”
음식점 창업 인큐베이팅을 목적으로 2017년 만들어진 위너셰프는 5개(현재는 4개) 음식점 예비 창업팀이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받으면서 보증금, 권리금, 주방 기기 사용료 없이 공짜로 식당 공간을 이용하고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곳이다.
음식점 창업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진입 장벽도 거의 없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살아남기 힘들다는 의미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식당 중 돈 버는 곳은 5%도 채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냉철한 평가다. 그럼에도 굳이 창업을 해야 한다면 주인이 아닌 고객이 먹고 싶어할 것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음식을 제공하려면 고객들에게 오히려 돈을 주라는 일갈도 함께 붙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그만한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한번은 40년 된 감자탕집이 바로 옆에 있는데 감자탕을 하겠다고 찾아온 청년이 있었다. 기본적인 상권 조사조차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이 팔고 싶은 메뉴만 내세우는 것”이라며 “겨우 설득해 황태해장국으로 메뉴를 바꾸기는 했지만 결국 일주일도 못 가 그만뒀다”고 전했다.
철저한 준비 역시 중요하다. 유 대표는 사업을 하려면 적어도 3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이템 찾는 데 1년, 기획하는 데 1년, 현장 체험하는 데 1년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려는 메뉴의 대표 음식점 50점 정도도 꿰고 있어야 한다. 특히 경쟁사들이 어떻게 운영하는지, 메뉴 구성은 어떤지 등을 철저히 분석하는 노력 정도는 해줘야 한다. “식당은 그 자체가 커닝페이퍼입니다. 돈 내고 먹으면 서비스는 어떻게 하는지, 반찬 구성은 어떤지, 간은 어느 정도인지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댓글을 통해 고객 반응도 볼 수 있죠. 준비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이 정도의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도 소개했다. ‘롤 모델인 맛집을 무조건 베껴라.’ 괜찮은 식당을 하나 정해 메뉴와 가격, 실내 인테리어 등 모두 따라하는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해당 맛집을 방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칼국수집에서 콩국수를 준비한다면 ‘이제 우리도 여름 장사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됐구나’ 하고 준비하는 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멘토링을 하다 보면 답답한 경우도 많다. 유 대표는 “자신이 보기에 맛도 없는데 장사가 잘되는 집을 보면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벤치마킹”이라며 “사업 계획을 짤 때도 투자자를 끌어들인다고 생각하고 짜야 하는데 지금껏 그런 예비 창업자는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위너셰프에는 그 흔한 키오스크가 없다. 이유가 있다. 그는 위너셰프의 정체성을 ‘오너 셰프를 만드는 것’으로 정의한다. 중요한 것은 ‘셰프’가 아니라 ‘오너’에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감성을 다독여 내 단골로 만드는 주인을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다. 손님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유 대표는 “단골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셀프 서비스가 아니라 주인이 직접 손님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며 “그래야 셰프가 아니라 비로소 ‘오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