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 부문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치 조정 작업에 착수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혼란 등의 영향으로 신규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해 2030년 온실가스 감축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는 방안을 공표한 바 있다. 기존 2030 NDC 목표치는 26% 수준이었지만, 이전 정부에서 ‘탄소중립 선도국’이라는 찬사를 듣기 위해 이를 14%포인트를 끌어 올렸다. 이같은 한국의 NDC 상향으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 확대를 공언한 중국 등 여타 국가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우려가 거셌지만, ‘친환경 도그마’에 빠진 이전 정부는 NDC 상향안을 밀어붙였다. 당시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친환경 위주로 산업구조 재편을 어느정도 마무리 한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 전략에 한국이 당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7일 “최근 공급망 이슈 등으로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산업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들여다보고 있다”며 “이와 관련한 연구 용역을 발주한 상태로 향후 보고서를 토대로 세부 로드맵 수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는 2030년 산업 부문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14.5% 낮추겠다고 밝히면서 바이오나프타·철스크랩(고철) 투입량 확대,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을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문제는 올 들어 공급망 혼란에 따른 각종 자원 수급 문제로 정부 대책의 실효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철강의 경우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NDC 목표치 달성을 위해 지난해부터 고철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전기로에 고철을 투입해 철강을 생산하면 고로와 철광석을 활용하는 방식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75%가량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조만간 고철 수출 통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수증기로 변환시키는 ‘수소환원제철’을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2050년 이후에나 상용화가 가능하다. 수소환원제철 개발을 위한 관련 예산도 예비타당성조사에 따른 절차 등으로 내년도 예산에 반영될지 여부가 불확실하다. 철강 업계의 근심이 깊은 이유다.
정부는 또 주요 산업단지에서 연료원으로 많이 사용하는 중유 대부분을 액화천연가스(LNG)로 교체한다는 방침이지만 원가 부담 문제로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 제한으로 LNG 가격이 1년 새 2배 이상 급등한 탓이다. 시멘트 생산 시 투입되는 에너지원의 36%를 기존 유연탄에서 폐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각국의 폐플라스틱 수출 규제로 쉽지 않다.
화학 업계 또한 마찬가지다. 화학 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비롯한 각국이 나프타 원료로 활용 가능한 폐플라스틱 수출을 제한하는 등 폐자원도 자원 무기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옥수수나 콩 등을 원료로 한 바이오나프타 같은 경우 식량 가격 급등으로 가격이 껑충 뛰어 석유화학 업계의 탄소 중립 달성 가능성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2030년 산업 부문 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14.5% 감축하려는 목표치는 놓아둔 채 철강·석유화학 등 업종별 배출 목표치만 미세 조정할 예정이다. 기업들에서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기업들은 정부가 NDC 달성을 강제할 경우 결국 제품 생산을 줄이거나 최후에는 공장 가동 중단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정부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업종별 전체 NDC 목표를 낮추면 에너지·수송·건물 등 여타 부문 NDC는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철 등 각종 폐기물 활용 제고 방안 등을 검토 중이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실정이다.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국제사회에 공언한 ‘NDC 40% 상향’에 따른 부담이 두고두고 우리 산업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030년 NDC 목표를 이미 유엔에 제출했다는 점에서 결국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며 “일각에서는 원전 활용도 제고로 에너지 부문의 탄소 감축 여력이 늘어난 만큼 산업 부문이 추가로 탄소 배출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지만 관련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