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정책이 대대적으로 손질된다. 앞으로 저소득 보훈대상자는 부양의무자 기준에 관계 없이 생활수당을 받게 된다. 군인 전직지원금 및 지급시기가 일반인의 구직급여와 형평성에 맞도록 단계적으로 인상·확대된다. 오는 10월부터는 한국전쟁 및 베트남전 참전유공자가 위탁병원 이용시 진료비 뿐 아니라 약제비까지 지원받게 된다.
윤동주 시인, 장인화 의사를 비롯해 직계후손이 없는 무호적 독립유공자 156명에 대해 정부가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를 창설한다. 부산지역 미군 제 2군수기지사령관으로 부임 후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대한민국의 복구 및 전쟁고아 돌봄에 일평생을 헌신한 고 리처드 위트컴 장군을 기리기 위해 훈장 추서 및 위트컴상 제정이 추진된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아 새 정부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박 처장은 “보훈대상자에 대한 보상·예우 중심의 전통적 보훈의 역할을 선진국 위상에 걸맞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혁신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를 통해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제복근무자 및 청년의무복무자, 미래세대 등 일반국민에게 다가서는 정책을 펼쳐 국민통합과 국가정체성 확립에 기여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재도약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업무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박 처장은 4대 핵심과제 및 11개 정책과제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4대 핵심과제는 보훈 역사를 널리 알려 국가정체성을 확립하는 것,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불편과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 참전국과의 연대를 확고히 하여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 청년 의무복무자 및 조기전역군인의 사회복귀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보훈심사 기준 등 손질…지원 문턱 낮춘다
보훈처는나라를 희생하신 분들의 불편과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보훈심사 및 상이등급 기준을 정립하기로 했다. 국가에 대한 희생 및 공헌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차원이다. 그런 차원에서 오랜기간 화재진압을 비롯한 위험직무에 종사한 뒤 공무관련성이 강하게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직접 입증어려웠던 질병(기관지암 등)에 대해 공무관련성을 적극 인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아울러 국가가 직접 나서서 증거자료를 발굴하고 불충분한 기록을 적극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주도의 '사실조사’ 건수를 현행 연간 1000건에서 2026년까지 두 배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신체검사 간소화를 위해 상급종합병원 등에서 발생하는 장해진단서로 보훈병원 신체검사를 대체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상이등급 체계를 현실에 맞게 지속적으로 정교화하는 작업도 실시된다. 특히 최저 등급인 상이 7급 기준이 개선된다. 보훈처는 산업재해 등 국내외 유사 급여수준을 고려해 7급 보상금 및 참전명예수당, 6·25신규승계자녀수당 등 대상별 보상 불균형도 합리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저소득 보훈대상자에 대한 지원이 강화된다.그런 차원에서 생활조정 수당 부양의무자 기준을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없앤다. 우선 2023년에는 중증장애인에 대해, 2024년에는 65년 이상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어서 2025년에는 해당 기준을 전면폐지하기로 했다.
한국전쟁 및 월남전 등에서 싸웠던 참전유공자들이 보다 편하게 의료·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보훈 인프라 및 예우가 확충된다. 우선 참전유공자가 위탁병원 이용시 받게 되는 지원이 오는 10월부터 확대(진료비→진료비+약제비) 된다. 보훈처는 고령이거나 거동불편 상태의 참전유공자가 집과 가까운 곳에서 진료 받을 수 있도록 2027년까지 각 시군구별로 민간 위탁병원을 5곳 수준으로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민간 위탁병원이 매년 100곳씩 추가 지정된다. 올해 하반기에 광주 요양병원이 문을 열고, 2024년까지는 대전·대구 재활센터 및 부산 요양병원이 개원한다.
◆군 제대 후 취업 지원도 확대
청년 의무복무자의 사회복귀 지원 정책도 적극 추진된다. 보훈처는 우선 현행 제대군인법을 개정해 병역의무를 이행한 청년을 위한 국가 및 자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근거를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발표했던 ‘군 복무기간의 근무경력 산입’, ‘군 복무중 학점취득 인정’, ‘국민연급 가입기간 확대’ 등을 추진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협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조기전역군인에 대한 취업지원 등도 강화된다. 특히 전직지원금의 지급단가 인상 및 지급기간 확대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일반인의 구직급여는 최장 9개월간 최대 198만원씩 지급되는데 비해 군인에 대한 전직지원급은 최장 6개월간 50만~70만원식 지급되는 데 그쳐 형평성 논란을 샀기 때문이다. 제대군인지원센터를 제대군인 특화 교육·상담거점으로 활용하고, 장교 및 부사관 중 중·장기 복무자 뿐 아니라 단기 복무자에 대해서도 취·창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유공자 정신 기린다…용산에 ‘美 내셔널몰’ 같은 대규모 ‘호국보훈공원’ 조성 추진
보훈 역사를 알려 국가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차원의 정책도 추진된다. 우선 서울 용산공원에 호국보훈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를 통해 국가에 헌신한 이들을 추모하고,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특히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몰을 비교 사례로 들었다.현지에는 2차대전 참전비, 한국전 기념공원 등이 들어서 있고, 연간 2,400만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호국보훈공원 조성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협의 중이다.
서울 수유리에 합동 안장돼 있는 광복군 유해 17위는 최고 예우를 받으며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된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통해 대중에 알려진 황기환 지사(애국장)를 비롯해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하다 국외에서 숨진 독립유공자의 유해 봉원도 적극 추진된다. 보훈처는 이번 업무보고 자료에서 “보훈대상자에 대한 물질적 보상·예우의 전통적 역할을 넘어 국민통합을 주도하는 보훈을 통해 대한민국 재도약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