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재정 분권을 추진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관리를 넘긴 지방 하천이 최근 집중호우로 대부분 범람했다. 하천 범람으로 인명 및 농가 피해가 커지면서 지방 하천 관리 사업을 다시 중앙정부로 이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자체 재정 자립도가 낮아 지방 하천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긴축재정을 기조로 내건 윤석열 정부 역시 지방 하천 사업을 국가사업으로 넘겨받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하천 관리 사업 주체를 놓고 정부와 지자체의 ‘떠넘기기’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까지 이어진 집중호우로 사망·실종된 20명 가운데 8명이 하천 인근에서 변을 당했다. 7일 경기도에서 70대와 50대 남매가 하천에 휩쓸려 실종됐다. 강원도 원주에서는 하천 가까이에서 양봉을 하던 80대 부부가 실종됐다. 14일 충남 부여에서는 하천 범람으로 트럭에 타고 있던 2명이 트럭과 함께 떠내려가 수색 중이다. 인명 피해뿐 아니라 침수된 농지 1140㏊의 피해 대부분도 하천 범람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천 범람으로 인한 홍수 피해는 비단 ‘역대급’이라고 평가받는 올해 폭우 때만 발생한 게 아니다. 한국수자원조사기술원이 2017~2019년 작성한 국내 홍수 피해 상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홍수가 발생한 기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하천 범람이 홍수 피해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보고서는 “대(大)하천 중심의 국가 치수 정책으로 중·소규모 하천에 피해가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대하천(국가하천)의 경우 범람 예방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지만 중·소 규모 하천(지방 하천)은 정비가 되지 않아 집중호우 때마다 홍수 피해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8년 말 기준 국가하천 정비율은 81.4%인 반면 지방 하천은 절반 수준인 48.1%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지난 정부가 지자체로 넘긴 지방 하천 관리 사업을 다시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자체 재정 자립도가 50% 수준이라 하천 정비사업 등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 분권을 위한 중앙·지방 간 기능 조정을 위해 2020년부터 지방 하천과 소하천 관련 사업과 예산을 지방으로 이전했다. 2020년 이전에는 지방 하천 정비사업 예산을 국가가 50%, 시도가 50%씩 부담해왔는데 2020년부터는 국가보조금이 끊겼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 하천 정비사업을 지자체로 넘기기로 결정한 2019년 국정감사에서 권은희 의원 등은 “하천 정비 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한다면 예산 부족에 따른 부실 관리로 사고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현실이 됐다.
경기연구원이 2021년 작성한 보고서도 하천 사업의 지방 이양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해 ‘하천 사업 추진에 필요한 예산 확보 어려움 예상’이라고 분석했다. 경기연구원 관계자는 “하천 관리 담당 공무원들의 설문 조사 결과 지자체 특성상 민원에 다소 민감할 수 있어 체계적인 하천 정비사업 추진이 어려울 수 있고 통일성 있는 사업 계획 수립 및 추진이 힘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당장 지방 하천 관리 사업을 국가사업으로 가져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지출 긴축 등을 이유로 예산 당국이 지방 하천 사업 이양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방 하천 정비를 맡으려면 다시 하천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이 지방 하천 정비 등의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