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을 모아 움켜쥐면 쏙 들어올 만한 지름 11.2㎝의 구(球). 이를 매단 23.8㎝ 높이의 받침대 아래에는 화려한 은입사 기법으로 정교한 문양과 날 일(日), 달 월(月)자가 새겨 있다. 소형 지구본 같은 구의 표면에는 간격 일정한 격자무늬와 함께 자축인묘로 시작하는 12지(支)가 적혀 있다. 해의 움직임과 그 그림자로 시간을 알던 조선의 해시계다. 특이한 것은 휴대용이라는 점. 그간 학계에도 알려진 바 없는 완전한 구형의 휴대용 해시계가 조선 후기인 1890년에 제작된 후 국외로 반출됐다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3월 미국 경매를 통해 매입해 국내로 들여온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日影圓球)’를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지금껏 학계에 알려진 바 없는 희귀 유물을 해외에서 되찾아 온 것이라 의미가 각별하다. 언제 어떤 경위로 국외 반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1940년대 미군 장교로 일본에 주둔했던 원 소장자가 사망한 후 유족으로부터 유물을 입수한 개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해시계의 일반형인 ‘앙부일구’는 태양의 그림자를 만드는 뾰족한 막대인 영침(影針)이 고정돼 되어 특정한 지역에서만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지만 이번 환수 유물 ‘일영원구’는 두 개의 반구가 맞물려 각종 장치를 조정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당시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전문가들의 검토에 따르면 ‘일영원구’는 수평·수직을 맞추는 다림줄로 수평을 맞추고, 나침반으로 북쪽을 향하게 한 후, 내부 장치를 통해 위도를 조정한 뒤 시간 측정이 가능하다. 태양의 그림자가 구의 표면에 있는 홈 속으로 들어가게 해 현재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12지의 명문과 96칸의 세로선은 하루를 12시 96각(15분)으로 표기한 조선 후기의 시각법을 보여준다. 12지의 표시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시패(時牌)’가 나타난다. 시패는 12개가 아닌 9개로 해(亥)·자(子)·축(丑)이 표시되지 않는다. 문화재청 측 관계자는 “해시계는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만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가 뜨지 않는 시간대는 표시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보로 지정된 자격루와 혼천시계에서도 12지로 시간을 나타내는 시보(時報) 장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의 과학기술을 계승하고 있다”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증가하던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이 고안된 유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일영원구’의 반구 표면에는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했다’는 명문이 새겨있어 1890년 7월에 제작됐음이 확인된다. 낙관을 통해서는 고종 대 무관이던 상직현이라는 인물이 제작자임을 추정할 수 있다. 희소성이 높고, 조선 과학기술의 집합체라는 의미, 제작자와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이 유물은 국보로도 손색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영원구는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을 통해 일반에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