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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상선언' 이병헌이 역할에 몰입하는 법

'비상선언' 이병헌 /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비상선언' 이병헌 /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병헌은 가장 자신 있는 연기는 배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비상선언'은 이병헌에게 이입하기 수월했던 작품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할 정도로 거대한 부성애 연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역시 한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이미 감정을 몰입할 수 있었다.



'비상선언'은(감독 한재림)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재혁(이병헌)은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임에도 불구하고 하와이로 떠나기 위해 KI501 항공편에 몸을 싣는다. 어렵게 탑승했지만, KI501에 바이러스라는 재난이 닥치고 재혁은 딸을 보호하고 무사히 착륙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이병헌이 생각한 재혁은 일반적으로 가질 수 없는, 특별한 트라우마와 과거가 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파일러라는 특수 직업을 갖고 있기에 더욱 특별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떼고 보면, 재혁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캐릭터다.

"재혁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비행 공포증이 있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하고 불안하고 공포스러움이 있어요. 그래서 비행기에 수상한 사람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반응한 거고요. 극단적인 재난의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가장 먼저 그 당황스러움과 공포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어요. 승객들의 당황스러움을 가장 먼저 대변하는 거죠. 가장 평범하지만, 즉각 반응하는 캐릭터로 해석했습니다.

영화 '비상선언' 스틸 / 사진=쇼박스영화 '비상선언' 스틸 / 사진=쇼박스


평범하면서 특별한, 독특한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던 요소는 두 가지다. 외적으로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실제 비행기와 똑같은 크기로 제작된 세트장 덕이었다. 실제 비행기에서 떼온 의자들과 소품들로 꾸며진 내부 역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할리우드를 방불케 하는 기술력도 감탄을 부르는 요소였다.

"'지금 내가 비행기 안에 있구나'를 느끼기에 최고였어요. 또 이렇게 큰 비행기를 360도로 회전시키기 위해 짐볼이 장착돼 있었는데, 움직임이 정말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대신 정말 안전한 환경에서 촬영이 진행됐어요. 처음에는 '내가 안전벨트를 잘못 매서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정말 조그마한 사고도 없이 촬영을 잘 마쳤죠."

"할리우드에서도 이렇게 큰 사이즈의 비행기를 짐볼로 돌려본 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시도했는데, 처음에는 긴장도 많이 됐어요. 그런데 며칠 하고 나니까 익숙해지고, 편해졌죠. 바로 눈앞에 펼쳐져서 그런지 몰입도 쉬웠고요. 이게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는데, 우리 작품에 상징 같은 장면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요."

내적으로 들어가 재혁과 공감한 지점은 공황 장애였다. 실제 공황 장애를 겪었던 이병헌은 비행 공포증을 앓고 있는 재혁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공황 장애 특성상 상황에 따라 여러 증상들이 발현할 수 있어 언제나 비상약을 갖고 있는 재혁. 이병헌도 언제 어떻게 공황 장애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약을 지니고 있다고. 여러모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부성애도 공감되는 지점이었다. 비행 공포증이 있는 재혁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이유는 오직 딸의 병을 고치지 위해서였다. 이병헌은 아들이 있는 아빠로서 재혁의 마음이 절실히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이 확신을 갖고 연기하는 순간은 결국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됐을 때라고 말하는 그의 부성애 연기는 단연 돋보였다.



"작품에서 다루는 게 사람 사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들을 연기할 때가 많죠. 상상하면서 연기했던 적이 많은데, '비상선언'은 달랐어요. 아이 아빠로서 연기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살짝 다른 게 있다면, 극 중에서는 딸이지만 전 아들이 있다는 점이에요. 아빠가 딸을 대할 때와 아들을 대할 때가 다른데, 이건 딸 가진 아빠들의 모습을 많이 관찰했어요. 확실히 말투다 대하는 게 다르더라고요."(웃음)

"영화 '싱글라이더'를 찍을 때도 전 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확실히 이번 작품에서는 아이의 연령이 비슷해서 그런지 더 감정 이입이 되더라고요.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에서 연기해서 힘이 많이 됐죠. 또 제가 부모로서 경험한 것도 많고요."

그간 수많은 영화들이 재난을 소재로 삼았다. 어떤 작품에는 영웅이 등장해 재난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판타지적인 요소를 섞어 재난을 해결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병헌은 '비상선언'이 이런 작품과 다르게 매우 사실적이라고 표현했다.

"'비상선언'은 다큐멘터리 느낌이 들 정도로 굉장히 사실적이에요. 조명, 카메라, 연기까지 정말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만든 영화예요. 관객에게도 그 비행기에 탄 승객이 된 것처럼 긴장감과 불안감을 주고 싶었어요. 또 영웅이 없는 점도 다르죠. 각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재난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예요. 이렇게 흘러가다가 결말에서도 '승리했다'는 느낌보다 씁쓸하게 끝나서 더 현실적이죠."



이병헌은 작품을 통해 재난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됐다고. 재혁은 기내에서 재난을 몸소 겪는 인물이기에 더욱 재난에 대한 공포가 피부로 와닿았다. 이야기 속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상상하는 버릇이 있는 이병헌은 재혁이 느끼는 공포를 함께 겪으며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특히나 촬영장이 실제 비행기를 방불케할 정도로 거대해서 더 상상이 잘 됐어요. 자꾸만 '비행기에서 재난을 만나면 어떻게 되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재난은 예견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비행기 테러는 전혀 예상할 수 없죠. 그래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재난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어요. 코로나 팬데믹도 예고 없이 찾아온 재난이니까 더 공감이 됐습니다."

재난의 두려움과 그 속에서 그가 강조한 건 결국 인간성이었다. 작품에서는 재난 상황 속 여러 인간 군상에 대해 다룬다. 어떤 인물은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사람들을 배척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고 또 어떤 인물은 다함께 살 방법을 모색했다.

"재난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이기심, 희생 등 다양한 모습이 나와요. 또 냉정한 판단을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아주 감정적인 인물도 있죠. 가장 중요한 건 기본적인 인간성을 지키면서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고요. 아마 감독님도 이런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을 거예요. 우리는 어떤 쪽에 속할까를 생각해 볼 만해요."



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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