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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비상선언' 송강호, 내공이 빚은 연기 투혼

'비상선언' 송강호 / 사진=쇼박스 제공'비상선언' 송강호 / 사진=쇼박스 제공




한국 영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 송강호가 영화 '비상선언'에서 보여준 연기는 감탄스럽다. 같은 재난 상황이라도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이고,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이 모든 걸 단숨에 보여준 그의 연기 내공은 익히 알고 있지만, 놀라울 정도다. 또 비행기 안과 밖을 아우르는 연결고리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며 묵직한 중심을 잡는다.



'비상선언'은(감독 한재림)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베테랑 형사 팀장 인호(송강호)는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 제보를 받고 사건을 수사하던 중 용의자가 실제로 KI501 항공편에 타고 있음을 파악한다. 심지어 KI501에는 인호의 아내가 타고 있는 상황. 인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나아가 바이러스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처음 '비상선언'의 시나리오를 봤을 때 흔히 봐온 재난물이라고 생각했던 송강호. 그럼에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한재림 감독의 담담한 어법 때문이었다. 단순히 재난 상황만 묘사하는 게 아니라, 이를 헤쳐나가고 수습하는 과정이 다른 재난물과의 차별점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일어나면 안 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재난을 겪게 되잖아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후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그런 지점에서 '비상선언'은 달랐어요. 한 감독이 재난을 헤쳐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른스럽고 담담하게 담았더라고요."

작품은 바이러스가 창궐한 비행기 안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비행기 밖의 모습을 적절하게 섞어 균형을 맞춘다. 그리고 중심에는 인호가 있다. 인호는 비행기 밖에서 직접 발로 뛰며 용의자를 특정하고, 치료제를 찾아 나서는 인물. 또 비행기에 탑승한 아내와 연결고리로, 자연스러운 연결점이 되는 역할을 한다.

"비행기는 특수해요. 배나 기차 같은 경우에는 어찌 됐든 중간에 역이나 항구에 잠시라도 정박할 수 있지만, 비행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접촉을 못하잖아요.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인 상황에서 분명 딜레마에 빠질 거니까요. 이것을 너무 슬프고 감정적으로만 풀지 않으려고 했어요. 또 너무 냉정하지도 않게요. 적절하게 중심을 잡기 위해 한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공간의 연결고리가 된 인호는 장르까지 융합한다. 추격전을 벌일 때는 스릴이 넘치다가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여줄 때는 휴머니즘 그 자체다. 또 인호의 소소한 웃음 코드 덕분에 긴장감 가득한 작품에 잠시나마 숨 돌릴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거예요. 비극 속에 희극이 있고, 희극 속에 비극이 존재하듯 우리 일상의 어떤 상황에서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니고 웃음만 있는 것도 아니죠. 희로애락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게 인생사예요. 연기할 때 전혀 계산하거나 의도하지 않았어요. 상황에 몰입하다 보니 감정이 이렇게 나온 것 같아요."

'비상선언' 스틸 / 사진=쇼박스'비상선언' 스틸 / 사진=쇼박스



'비상선언'은 항공 재난 영화지만 아쉽게도 송강호가 직접 비행기에 타는 신은 없었다. 한국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을 한층 끌어 올렸다는 평을 들은 엄청난 비행기 세트와 거대한 짐벌을 자랑하는 작품. 송강호는 첨단 기술을 체험하지 못해 초반에는 잠깐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저도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이병헌을 보고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요. 밖에 한 번도 안 나오고 세트장에서 쭉 연기해서 좋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한 번 가서 짐벌을 보니 공포스럽더라고요. 그때부터 지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깨달았어요."(웃음)

송강호는 비행기에 타지 않았지만 추격전도 벌이고, 비를 맞으면서 지상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제약회사 직원을 쫓다가 담을 넘는 장면을 찍었을 때는 부상을 당했다고. 자칫 아찔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지만, 송강호는 오히려 실제로 다리를 절뚝거렸기에 더 생생한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고 자랑했다. 그야말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였다.

"절뚝거리는 상황이 시나리오에는 없었는데, 다쳐서 진짜처럼 나왔어요. 요즘 한국 영화 현장은 안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요. 당연한 거죠. 액션이든 추격신이든 조금이라도 위험한 요소가 있으면 여러 번의 실험을 거쳐 안전하게 만들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촬영했어요. 그런데 부상은 의도치 않게 별거 아닌 순간에 당하는 거더라고요. 담을 넘을 때 높지도 않고, 매트리스도 깔려 있어서 손쉽게 넘어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상을 당했죠. 결국 우리 재난도 이런 순간에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 상황을 다룬 '비상선언'. 공교롭게도 시나리오가 완성된 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다. 송강호는 간접적으로나마 먼저 바이러스 재난을 겪었기에 팬데믹을 바라보는 마음이 남달랐다고 털어놨다. 모두가 힘을 모아 재난을 이겨내야 되는 만큼, 그는 삶의 소중한 가치와 공동체와 이웃에 대한 마음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랄 뿐이다.

"참 많은 분들이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의도치 않게 '비상선언'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됐죠. 절묘한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어떤 재난을 당하고 힘든 일을 맞이해도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잖아요. 사회 공동체나 이웃에 대한 생각, 또 평소에 알고 있지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느끼면 어떨까요. 그만큼 큰 보람은 없겠다 싶어요."

이번 작품이 송강호에게 더욱 의미가 큰 이유는 '우아한 세계', '관상'에 이어 한재림 감독과 인연을 이어갔다는 거다. 그가 본 한 감독은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다시 촬영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한 감독을 보면서 예술가로서 감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다.

"'우아한 세계' 때 8번인가 재촬영을 했어요. 전 이렇게만 찍어주면 8번이 아니라 80번도 다시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번을 다시 찍으면 8번 다 좋아졌거든요. 정말 놀라웠죠. 당시 '어린 친구가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인상 깊어서 작품을 이어올 수 있었어요. 나이는 저보다 어린데, 평소에도 많이 배우고 있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비상선언'은 제74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먼저 공개된 바 있다. 송강호는 당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그야말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1년이 지난 후에는 영화 '브로커'로 칸 영화제에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했으니 그야말로 '칸의 남자'라 불릴 만하다. 배우로서 더 이룰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것을 이룬 그다.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영광도 누렸지만, 사실은 배우로서 과정일 뿐이에요. 배우 송강호의 목표는 끊임없이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거예요. 어떤 작품이든 상관없어요. 결과는 성공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요. 그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게 유일한 목표입니다."(웃음)



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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