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라면 누구나 다 안다는 웹드라마 ‘짧은대본’를 아시나요? 그중에서도 엉뚱한 매력의 여대생 이나를 연기한 배우 윤상정은 시청자들을 홀딱 반하게 만들었죠. 이나는 남자친구에게 집착하는 스타일이지만 소심한 성격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제때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은 인물인데요. 윤상정은 눈은 그대로지만 입만 웃고 있는 특유의 표정을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며 웹드라마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TV로 영역을 넓힌 그는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사내맞선’, ‘별똥별’ 등 히트작에 출연하며 MZ세대 회사원 캐릭터 대표까지 됐는데요. 매 작품 한 단계씩 성장 중인 윤상정을 유튜브 채널 지핑(ZIPPING)이 직접 만나봤습니다.
똘망똘망한 눈, 발랄한 목소리. 자신의 모습을 캐릭터에 투영해서였을까. ‘짧은대본’ 조회수 TOP 10의 절반 이상은 윤상정이 출연한 에피소드다. 그는 극 중 남자친구 현재(김상희)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신경 쓰고 의심하는 서툰 연애를 디테일하게 그리며 시청자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현재가 이나에 비해서 세심한 편은 아니라 이나의 입장에서는 무심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왜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났는지, 어느 부분에서 서운한지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나의 행동이나 말을 과도한 집착으로 볼 수 있고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해가 되는 구석들이 분명히 많아요.”
감정을 더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건 눈빛 연기 덕분이다. 말없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지만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이런 표현에도 자신의 모습이 짙게 깔려있다.
“제가 생각하는 것들이 눈에 잘 보이는 것 같아요. 진실한 눈이죠. 사람들이 제가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억지로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다 알아채거든요.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안 웃고 있다고. 눈에 감정이 잘 드러나게 표현했어요.”(웃음)
윤상정은 이나를 넘어 새로운 캐릭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해 우리는’부터 ‘사내맞선’ ‘별똥별’까지 우연하게 세 작품 연속 회사원 역을 맡으며 MZ세대의 표본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지난해 주목받은 SBS ‘그 해 우리는’에서는 눈치도 빠르고 정보에 능한 기획팀 팀원 예인을 연기하며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 쾌활하고 엉뚱한 혜지 역으로 출연한 SBS ‘사내맞선’에서는 ‘회장(이덕화)의 머리가 진짜 가발이냐’고 귀여운 술 주정을 부리는 연기로 화제가 됐다.
‘별똥별’의 연예기획사 홍보팀 사원 은수 역은 더 특별하다. ‘짧은대본’의 출연진들이 깜짝 등장해 은수를 이나로 착각하는 술자리 신이 있었던 것. ‘짧은대본’ 애청자였던 ‘별똥별’ 제작자의 제안으로 완성된 컬래버레이션이었다. 두 작품의 세계관 충돌에 팬들은 즐거워했다.
“감동적인 댓글들이 있었어요. ‘이나 요즘 드라마 많이 찍고 잘 되고 있는데 다시 봐서 반갑네’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거 보면 내적 친밀감이 들어요. 이렇게 이나로 기억해 줬다가 다른 드라마에서 보고 또 생각해 주시는 게 정말 감사해요. 저의 성장을 함께해 주시는 느낌이 들어서 제일 기분 좋습니다.”(웃음)
큰 역할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자신의 색깔을 녹여낼 수 있었던 건 다양한 경험의 덕이 크다. 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로 진학하며 일찌감치 배우를 꿈꿨던 윤상정은 대학 전공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빨리 꿈을 정하면서 다양한 학문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해서다.
“영어 편입 전형으로 대학을 가게 됐어요. 시험이 끝나고 다니던 학원에서 강사로 반을 맡아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요. 그때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생각하면서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학원에서 어떤 선생님이 인상 깊었는지, 그때 내가 선생님들한테 태도가 어땠는지, 위계질서 같은 건 어땠는지 등을 많이 생각하려고 했었어요.”
연기와는 접접이 없어보이는 법학을 전공하게 됐지만 결국 모든 것이 연기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쉴 틈 없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아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최근 인기몰이 중인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법정 드라마 출연도 꿈꾸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법에 관련된 거 나왔을 때 옛날에 학교 수업 들었던 때 배웠던 내용이 생각나면서 좀 더 흥미로웠던 건 분명히 있어요. ‘소년심판’을 보면서 김혜수 선배님의 연기에 정말 감명을 많이 받았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판사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모든 선택과 경험은 헛된 것이 없다고 여기는 윤상정의 철학은 글에서도 묻어난다. 그는 블로그에 일상을 돌아보는 글을 남기기도 하고, 감명 깊게 봤던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기도 한다. ‘당신의 일상 그리고 모든 이의 세상을 표현하는 그런 배우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긴 흔적도 남아있다.
“고등학교 때는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거든요. 내가 이만큼의 에너지를 뿜어낼 수도 있고 거기서 오는 희열감이 엄청 컸어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될 때 책임감이 훨씬 커져요. 단순히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작품, 이 역할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라고 생각하는 범위가 좀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얻는 게 삶에 대한 동력이거든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를 보면 다시 한번 살아갈 힘이나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그 작품에 존재함으로써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이 되고 싶어요.”
◆ ‘짧은대본’ 이나 눈빛 디테일 연기, 좀비 이야기, 학원 아르바이트 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지핑’을 검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