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디테일의 악마 조 맨친…美 전기차 뒷목 잡았다[윤홍우의 워싱턴24시]






“전기차 업계가 중국산 비중을 줄이려고 정말 노력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결국 수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 미시간주의 상원의원 데비 스태버나우가 최근에 한 얘기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6일에 서명한 인플레 감축법에 대한 사실상의 문제제기인데요. 전기차 신차를 살때 7,500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1,000만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향후 10년 동안 지급하기로 했는데 디트로이트는 물론 글로벌 전기차 업계 분위기가 삭막합니다. 이 혜택에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이 고집한 디테일의 악마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데비 스태버나우 상원의원데비 스태버나우 상원의원


조 맨친 상원의원조 맨친 상원의원


안녕하세요 서울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윤홍우입니다. ‘중국산 광물과 부품은 취급하지 않겠다’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혜택을 주겠다’ 7,400억 달러(966조원) 규모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을 두고 논쟁이 뜨겁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 법안은 바이든의 승리입니다. 그 이유는 백악관 홈페이지만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법안이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 캐치 프레이즈. Build Back Better(더 나은 재건)이라는 법안의 축소판이기 때문입니다.



1년을 넘게 질질 끌었죠. 같은 당인 민주당의 조 맨친 상원의원의 반대로 아예 묻힐 뻔 하다가 극적으로 부활해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근데 그 과정에서 너무 까다로운 조항들이 따라 붙었습니다.

소비자와 직결되는 부분은 전기차 세액공제. 사실상의 구매 보조금인데요. 미국은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자국 내 신차 판매 가운데 전기차 비중을 50% 까지 높인다는 야심찬 계획입니다. 그런데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러다가 전기차 판매가 되려 확 줄어드는거 아니냐는 아이러니한 우려가 나옵니다. 여기에 동맹인 한국, 유럽과의 무역 분쟁 소지까지 있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일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빡빡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생산지역.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주던 전기차 세재 혜택과 달리 앞으로는 생산지가 북미여야 합니다.

이게 한국 전기차에게는 아주 치명적인데요.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에 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조항은 법안 통과와 함께 바로 발효가 됐습니다. 미국 정부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차종 31개 모델을 제시했는데요. 당연히 현대자동차는 포함이 안됐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미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전기차를 생산하기까지는 아직 2~3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이 시간 동안 현대자동차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아예 미국산도 아니고 북미산이라는 것도 좀 희한한 부분인데요.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에만 혜택을 주는 조항이기 때문에 WTO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위반하는 사항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유럽의 통상 당국이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최혜국 대우 : 국제 무역에 관한 협정에서 특정 국가에게만 차등적인 특혜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

내년부터 적용되는 다른 조건들을 또 알아보면요. 총 7,500달러의 세제 혜택이 두 가지 조건으로 충족돼야 합니다. 배터리 광물에서 북미산 또는 FTA 체결국 비율 조건을 채워야 3,750달러, 배터리 부품에서 비슷한 조건을 채워야 또 3,750달러 이렇게 구성이 됩니다. 배터리 광물의 경우 처음에 40% 정도에서 시작해서 불과 4~5년 만에 80% 이상으로 비율을 올려야 합니다.

美 전기차 세액공제 가이드라인/코트라 워싱턴 무역관 자료 발췌美 전기차 세액공제 가이드라인/코트라 워싱턴 무역관 자료 발췌


지금 전세계 시장에서 리튬 등 배터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90%에 가깝고요.. 배터리 부품인 양극재 음극재도 중국산 비중이 70%가 넘습니다. 배터리 서플라이 체인이 지난 10여년에 걸쳐 구축되온걸 생각하면 3~4년 내 이걸 탈피하는게 사실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여기에 또 핵심 조건이 있는데요. 이건 2024년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Foreign Entity of Concern 즉 해외 우려국가 업체에서 조달한 부품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을 정면 겨냥한 조건입니다. 중국산에 대한 원천 봉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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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되면 아무리 북미에서 생산이 됐다고 해도 이 조건을 맞추는 전기차를 만들기는 불가능해집니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들고 일어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앞서 제가 올해 31개 모델이 혜택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당장 내년에 배터리 규정이 발효되면 아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모델이 없어집니다. 전기차 업체도, 소비자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미국 정부도 원하지 않는 결과가 닥치는 겁니다.



자 여기까지는 이미 법안 통과와 함께 공개된 부분이구요. 그러면 법안을 왜 이렇게 까지 만들어놨을까. 여기에서부터는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 법안은 아예 사장될 뻔하다가 올 여름 들어 급격히 속도를 내며 부활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 법안을 재차 밀어붙인 백악관 그리고 민주당의 척 슈머 원내대표와 이 법안에 반대해온 조 맨친 상원의원의 물밑 합의가 있었는데요. 현재 미국 상원은 50대 50이기 때문에 민주당에서 단 한명. 즉 조 맨친 의원의 이탈 표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연합뉴스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연합뉴스


맨친 의원은 그런데 ‘더 나은 재건 법안(BBB·Build Back Better)’이라는 이름으로 이 법안이 최초 설계될 때부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에는 줄곧 부정적 입장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보면요. 맨친은 미국의 화석연료 업계를 사실상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지역구 웨스트버지니아는 미국의 석탄 산업 중심지이구요. 맨친은 정유 업계로부터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는 정치인 중 한명입니다. 그는 지난해 영국의 가디언이 뽑은 미국의 기후위기 악당 12명에 포함되기까지 했는데요. 기본적으로 급격한 에너지 전환을 굉장히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인물입니다. 소속은 민주당이지민 정책 성향은 공화당에 더 가깝습니다.



그의 지역구를 봐도 그의 성향을 넘겨 짚을 수 있는데요. 웨스트 버지니아는 전기차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 주에 도요타의 공장이 있기는 하지만 지난 2020년 기준 웨스트 버지니아에 등록된 전기차가 600대에 불과합니다. 전체 차량의 1%도 안됩니다.

맨친 의원이 이번에 지역구인 웨스트버지니아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끌어내면서 척 슈머 대표와 법안 통과에 합의를 하긴 했지만요.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중국 견제’라는 명분으로 법안 곳곳에 녹여냈습니다.

민주당 지도부에 입장에서도 이 조항들이 비현실적이라는 걸 몰랐던건 아닐텐데요. 그들한테는 일단 법안을 통과시키는게 목적이었습니다. 당장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것이란 전망이 공공연한 마당에 지지층을 결집시킬 한방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기차 조항만 놓고 보면 민주당의 정치적 조바심과 조 맨친의 완고한 고집이 맞물려서 아주 기이한 법안이 탄생한 셈입니다.

자 그러면 앞으로 이 법안이 어떻게 실행될까요. 일단 11월 중간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좀더 윤곽이 잡힐 텐데요. 재닛 옐런 장관이 이끄는 재무부는 연말에 이 법안과 관련한 일종이 가이던스를 발표할 겁니다.

다만 지금 예상처럼 빡빡하게 시행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도 어마어마한 로비가 시작될거구요. 각 자동차 별로 세액공제 혜택을 따지기 위해 미국 정부가 전기차 공급망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짜겠다지만 이걸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런 회의적 시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입장에선 ‘북미산 전기차’ 조항에서 예외를 받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될텐데요.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연내에 다시 만난다면 이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순항하는 듯 했던 한미 경제 협력이 미국의 중간선거라는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시험대에 부딪힌 모습입니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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