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전력공사의 부채비율을 5년 내 90%포인트 가까이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놓았지만 장부상 자산 재평가 효과를 배제하면 재무 개선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이 보유한 땅값이 뛰어 재무구조가 나아지는 것처럼 보일 뿐 실질적인 체질 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14조 원 규모의 한전 재정 건전화 계획을 최근 마련했다. 한전이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을 재평가해 2024년 7조 원 규모의 자산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자산 매각을 통해 4조 원가량을 확보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부가 함께 내놓은 재무 전망치에 따르면 건전화 계획에 따라 한전의 재무구조는 외형상 크게 개선된다.
한전의 부채비율은 올해와 내년 369.1%, 359.1%로 횡보하다 2024년 들어 300.6%로 전년 대비 58.5%포인트 줄어든다. 정부는 2026년 들어 부채비율이 282.4%까지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는 “경영 환경 악화에도 불구하고 재정 건전화를 통해 이전 전망 때보다 부채비율 증가 폭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한전의 부채비율 감소가 체질 개선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토지 가격 상승에 따라 장부상 자산만 뛰었을 뿐 부채가 쌓이는 구조적인 원인은 손을 대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산 재평가가 없었다면 정부 설명과는 다른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전 부실의 핵심 원인은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기요금”이라며 “정부는 자산 가치를 다시 매기고 비핵심 자산을 팔아 재무구조를 바꾸겠다지만 지금껏 쌓인 부채를 일부 줄일 수는 있어도 앞으로 쌓일 빚은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자산 재평가 효과를 걷어내면 한전의 암울한 재무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7조 원의 장부상 자산을 배제하고 따져본 한전의 2024년 부채비율은 353%로 예년 수준에 그친다. 2026년 부채비율 역시 327%로 기대치를 밑돈다. 정부의 건전화 계획이 한전의 부채를 키우는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한전의 자본금이 넉넉지 않다”며 “차입 환경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도 장부상 지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개선 목표가 낙관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재무 상황을 전망하면서 공기업 수익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공요금이 정상적으로 조정된다는 점을 전제했다는 지적이다. 가령 고물가 기조가 지속될 경우 당초 계획된 전기료 인상이 미뤄져 한전의 재무 상황은 더 악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