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8월 22일 주요 군부대와 정부 기관, 공기업 청사 등에서 이색 장면이 펼쳐졌다. 방독면을 쓴 군 및 민방위대 화생방 요원들이 제독 차량 등의 장비를 대거 동원해 생화학 테러 발생에 대응하는 훈련을 벌였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날 직접 화생방 방독면을 착용한 채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민관군은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일에 걸쳐 진행된 하반기 한미연합연습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에서 북한의 핵·미사일뿐 아니라 생화학전 등에 대응하는 절차를 익혔다. 이번 UFS는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상호 단절됐던 정부연습(을지연습)과 한미연합군사연습 간 통합 체계를 복원해 실시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올해 UFS 기간에는 북한의 화학탄 공격 상황을 반영한 연습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미는 2011~2016년까지 생물방어연습(AR)을, 2017년부터는 화생방대응연습(AS)을 실시했는데 2020~2021년에는 코로나19로 미시행됐다가 올해 5월 재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UFS를 계기로 한미 생화학전 방어망의 보완점도 확인됐다. 북한의 생물학 병기 및 화학무기 개발 능력은 고도화돼 있는 데 비해 해당 도발을 신속히 발견할 조기 탐지망은 미비한 데다 전문 인력도 크게 부족했다. 특히 화생방 상황 발생 시 중증 및 사망자를 최소화할 백신 및 치료제와 관련해 민간은 물론 우리 군 및 주한미군 모두 접종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 대응 절차 아는 사람 태부족
특히 유사시 행정기관 및 민간 분야에서 비상 대응 절차로 전환하는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고 지도할 전문 인력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적인 화생방 대응 부대들을 두고 수시 연습을 하는 군과 달리 일반 행정기관이나 공기관·기업 등은 주로 을지연습이나 민방위 훈련과 같은 제한된 기간에만 화생방 대응 절차를 연습한다. 그런데 이때 화생방 대응 관련 매뉴얼을 평소에 충분히 숙지하고 연습을 제대로 지도할 행정기관 등의 비상계획관이나 동원 담당자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군 및 행정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인사혁신처의 국가공무원 인사 통계에 따르면 정부 기관의 전문경력관 중 비상 계획 및 예비군 관리 직무를 맡고 있는 담당자는 68명에 불과하다.
한 당국자는 “주요 행정기관별로 군 출신 등을 비상계획관으로 임용해 전쟁 발발 등의 국가적 위기에 대응하는 업무를 맡겨왔다”며 “그런데 정부가 공무원 정원을 점진적으로 줄이는 와중에 비상계획관도 타깃이 돼 현재는 해당 인력이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부 정부 기관 등에서는 전시 전환 및 동원 업무 담당자가 전문성 없이 순환보직제로 보임되는 경우도 있다고 관계 당국자들은 귀띔했다. 한 소식통은 “(충무계획 등을 비롯해) 위기 관리 업무를 담당할 직무를 순환보직제로 돌리다 보니 주기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와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업무를 보고 있다”며 “그나마도 매년 정부연습 등이 정례적으로 정상 실시됐을 때는 전임자로부터 업무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연습이 한때 생략되거나 소규모로 이뤄지면서 전임자도 업무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더라”고 우려했다.
◇한미연합 태세에도 허점
정부 기관뿐 아니라 한미연합군 차원의 화생방 대비 태세에도 허점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북한 등이 생물학무기를 동원해 테러나 제한적 기습 공격에 나설 경우 이를 조기 탐지하고 감염을 예방하며 사후에 치료를 하는 대응 체계의 전 과정에서 미비점 보완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례로 우리 군은 북한이 배양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저균에 대해 일반 장병은 물론이고 간부·장교들까지도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이 소속 병사 등에게 탄저균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과 영국의 안보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 및 랜드연구소가 최근 공동 발간한 ‘북한의 화생 무기, 전자기펄스, 사이버 위협:특성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이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4종의 생물학무기(생물학 작용제) 가운데 백신 접종이 필요한 질병은 탄저병·두창·장티푸스 등 세 종류다. 이 가운데 탄저병은 일반적으로 탄저균 내생포자를 흡입해 감염되는데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사망률이 거의 100%에 이른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는 앞서 랜드연구소가 미국 시카고 등에서 탄저균 공격이 발생하는 것을 전제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1~2㎏의 탄저균 내성포자를 함유한 슬러리(일종의 걸쭉한 액체 상태) 75㎏을 도심 야외에 대규모 방출할 경우 즉시 항생제 치료를 한다고 해도 사망자가 약 3만 7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존자 중에도 6만 명이 영구 장애를, 2만 명은 일시적 장애를 겪고 190만 명은 수 주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시뮬레이션을 서울에서 할 경우 결과는 한층 심각해 총사망자가 10만 명에 육박할 수 있으며 예방적 항생제 투여가 어려울 시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서울의 인구밀도가 시카고보다 높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생물학 작용제 중에는 한반도 등의 풍토병인 유행성출혈열(한국형출혈열)이 있다. 우리 군의 경우 국내에서 개발된 백신을 장병들에게 접종해왔다. 다만 해당 백신은 아직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주한미군은 유행성출혈열에 대한 백신 접종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 질타에 발 묶인 조기 탐지 체계
백신 접종에 이처럼 허점이 있다면 북한 등의 생물학 작용제 도발 초기에 신속히 탐지해 감염자들을 조기에 치료하고 관련 지역 등에 대한 적절한 방역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탄저균 등은 잠복기가 적게는 수일, 많게는 수 주에 이르기 때문에 조기 탐지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의심 사례가 발생할 경우라도 전문 교육과 훈련을 받고 정밀 장비를 갖춘 전문 요원들이 현장에 파견돼 검체 등을 확보하고 감염 여부를 판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더구나 이 같은 전문 요원 수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북한이 동시다발적으로 생화학적 도발을 할 경우 한미가 징후를 파악하고도 적시에 인력을 파견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미국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명 ‘주피터(JUPITR)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합동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 위협 인식’ 체계를 개발하려 했다. 이는 적성국이나 테러 단체 등의 생화학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병원균, 독성 물질들의 조기 탐지를 목표로 삼았다. 기존보다 비교적 간편하게 다룰 수 있는 탐지 도구인 ‘생물학분석능력세트(BICS)’를 일선 부대 등에 보급해 고도로 훈련된 전문 요원이 아닌 일반 병사가 휴대 중인 BICS로 임무 현장에서 병원균 등의 의심 표본을 채집하고 현지 부대 및 연구소에서 4~24시간 내에 위험성 여부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 같은 표본 채집, 분석 결과는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 미국 본토 등으로 전달돼 ‘생물무기 감시 포털(BSP)’을 통해 상황이 공유되고 ‘조기 경보(early warning)’ 절차를 밟아 신속히 방역 등의 조치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준다.
당초 미국은 주피터 프로그램을 한국·호주·캐나다 등에 주둔하는 미군 등에서 시험 적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주피터 프로그램 검증을 위해 한국·캐나다·호주로 보낸 탄저균 샘플이 활성화된 상태로 민간 배달 서비스를 통해 배송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2015년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이에 발목이 잡혀 이후 국내에서 해당 프로그램의 추진은 공식화되지 않았다.
미국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신규 탐지 체계로 ‘센토(CENTAUR)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위협 인지 이해 및 대응 강화 역량’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미국은 2026년까지 자국 내의 더그웨이 생물화학병기 실험실에서 센토 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아산정책연구원 및 랜드연구소는 전했다. 따라서 해당 프로그램이 한미 탐지망의 공백을 메우려면 일러도 2027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최소 5년간은 탐지 체계의 미비점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