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려줬으면 좋겠어요.”
'국힙 원톱' 아이유가 아이유했다. 눈과 귀를 꽉 채운 공연으로 3년 만에 만난 팬들에게 잊지 못할 황금 같은 시간을 선물했다. 국내 여가수 최초 잠실 주경기장에 입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확실히 증명하는 순간이다.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아이유의 단독 콘서트 ‘더 골든 아워(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이하 ‘더 골든 아워’)가 개최됐다. 지난 17일부터 진행된 공연의 2회차 공연 중 마지막 날이다.
오렌지 태양 아래, 다시 팬들과 함께
이번 공연은 지난 2019년 진행한 전국 투어 콘서트 ‘러브 포엠’ 이후 3년 만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아이유도 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최근 공연계가 다시 활발해지면서 아이유는 야심 차게 팬들과의 만남을 추진했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팬들은 한껏 들떴다. ‘더 골든 아워’라는 공연명에 맞게 드레스 코드까지 정한 것. 첫날 공연에서는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노을의 색인 오렌지 레드 계열로, 둘째 날 공연에서는 밤이 찾아올 무렵 노을 색을 뜻하는 보라 계열로 옷을 맞춰 입었다. 이날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잠실 등지에서 보라색 아이템을 갖춘 팬들이 가득해 진풍경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연장을 찾아 아이유의 폭넓은 팬층도 가늠케 했다.
골든 아워인 오후 7시에 시작된 공연은 오렌지빛 석양이 장관을 이뤘다. 와이어를 타고 등장한 아이유는 ‘에잇’(Prod&Feat SUGA of BTS)을 부르며 팬들 앞에 섰다. 이어 화려한 폭죽이 터지며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고, ‘셀러브리티(Celebrity)’로 단숨에 공연장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는 “어제보다 하늘이 더 예뻤다. 팬들이 더워서 고생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석양질 때 ‘에잇’을 꼭 부르고 싶었다”며 “계획했던 것만큼 하늘이 예뻤다”고 만족해했다.
팬들이 사랑하는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 대표곡 ‘팔레트’(Feat 지드래곤)는 잊지 못할 마지막 무대가 됐다. 아이유는 “내가 25살에 이 노래를 작사·작곡하고 정말 소중하게 가지고 있으면서 불렀다. 이제 30대가 됐으니 이 노래는 25살의 지은이에게 남겨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곡을 부를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다. 어쩌다 보니 서른이 됐는데, 굳이 이 곡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정식 세트리스트에서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좋은 날’에 대해서는 “가장 큰 히트곡, 출세곡”이라고 소개하며 “여러모로 추억이 많은 곡인데 정식 세트리스트에서는 당분간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 노래를 불러왔던 많은 무대들이 생각난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아울러 아이유의 정체성이 담긴 ‘이 지금’ ‘하루 끝’ ‘나의 의미’ ‘금요일에 만나요’ ‘내 손을 잡아’ ‘블루밍(Blueming)’ ‘라일락’ ‘무릎’ ‘겨울잠’ ‘나만 몰랐던 이야기’ ‘밤편지’ 등 히트곡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데뷔 14주년, 한국 女 가수 최초 잠실벌 입성
‘더 골든 아워’가 더 특별한 것은 아이유의 데뷔 기념일에 맞춰 기획된 공연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9월 18일 데뷔한 아이유는 이날 데뷔 14주년을 맞아 팬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유는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오늘 데뷔 14주년 기념 공연”이라고 되짚으며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일요일에 데뷔 기념일을 맞아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운이 정말 좋은 것 같다”고 행복해했다.
여기에 아이유는 국내 여자 가수 중 최초로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한 회 4만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국내 최대 공연장으로, 아이돌 그룹은 H.O.T.와 god, 신화, JYJ, 엑소, 방탄소년단 등 시대를 대표하는 팀들이 이 무대에 섰다. 아이유는 2회 차 공연 약 8만5,000석을 전석 매진시키며 남다른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
아이유 콘서트에만 있는 특별한 추억
이날 공연에는 아이유와 ‘가나다라(GANADARA)’로 컬래버한 바 있는 가수 박재범이 댄스팀 홀리뱅과 함께 특별 게스트로 무대에 섰다. 자신의 히트곡 ‘좋아’로 등장한 박재범은 “아이유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어리지만 존경하는 아티스트”라며“14년 동안 톱 위치를 유지하고, 자기 관리도 잘 하고 앨범이며 연기며 콘서트까지 모두 완벽하게 잘 하는 분이라 멋있다. 나도 같은 가수이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희생해야 하는지 알아서 더 멋있다”고 했다. 이어 “정말 아이유의 팬들은 좋을 것 같다. 국힙 원톱 아닌 진짜 원톱”이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스타들도 사랑하는 아이유인 만큼 관객석도 화려했다. 방탄소년단 정국을 비롯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수빈 범규, 배우 김수현 등이 첫날 공연에 참석하고, 그룹 있지(ITZY)가 게스트로 무대를 장식했다.
열기구를 타고 공연장 한 바퀴를 돈 것은 하이라이트. 멀리 있는 팬들을 위해 이동차를 타는 타 가수들의 공연과는 다르게, 아이유는 열기구 위에서 ‘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 무대를 꾸몄다. 그는 “2~3층 관객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잠실에 달을 띄워봤다”며 “런스루를 하는 금요일에 비가 와서 비바람을 맞으면서 달을 탔다. 진짜 너무 무서워서 하지 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하길 잘한 것 같다”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어두워진 밤하늘에 펼쳐진 드론쇼도 팬들을 즐겁게 했다. 별빛처럼 수놓아진 드론이 아이유의 얼굴로 바뀌기도 하고, 팬클럽 유애나의 로고로 변했다. 하늘 위 시계 모양 드론이 떠있고, 아이유가 ‘시간의 바깥’ 무대를 펼치는 것은 절경이었다. 무대를 마친 아이유는 “나만 드론쇼를 못 봤다. 어제 후기를 보니 뚝섬에서도 보였다고 하더라”며 웃음을 안겼다. 그는 “부모님도 오셨는데 어머니가 감동을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표현을 잘 안하는 분인데 새벽에 전화가 와서 우셨다고 하더라”며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고 흐뭇해했다.
축제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끈 마지막 곡은 ‘너랑 나’였다. 4만명의 팬들은 한목소리로 응원법을 외치며 화답했다. 이어 ‘러브 포엠’을 부르며 앙코르를 외치자, 아이유는 드레스로 갈아입고 등장해 ‘러브 포엠’ 무대를 꾸몄다. 그는 팬들이 준비한 슬로건 문구 ‘걸음마다 함께할게. 우리는 완벽한 14년 지기 친구니까’를 읽으며 “아주 나를 울리려고”라고 감격했다.
아이유는 1년 전부터 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밝혀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귀 이상으로 이번 공연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었다고. 그는 “다행히 목 상태는 잘 따라줬는데 어제 공연 말미부터 귀가 좀 안 좋아져서 어젯밤부터 오늘까지 지옥처럼 하루를 보냈다. 첫 곡을 시작하면서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보냈다”며 “항상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오늘 공연은 여러분이 다 했다”고 고마워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나를 정말로 응원해 주고 데뷔 14주년 기점과 이렇게 큰 규모의 공연을 하게 된 걸 축하한다는 마음이 정말 느껴졌다. 정말 오늘은 어려운 상태에서 공연을 했지만 어떻게 행복감을 같이 느낄 수 있는지 너무 신기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피날레곡 ‘아이와 나의 바다’를 앞두고 아이유는 “10대 때부터 도전해오고 달려온 길에 어쩌면 이 무대가 정말 마지막 도착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애초에 이렇게 큰 무대를 꿈꿔본 적이 없었다”면서도 “오늘의 기억으로 우쭐하지 않고 더 겸손한 마음으로 14년을 더 가보겠다”고 각오를 다져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