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보험

일본인 데이터로 보험 만드는데…'민영화 편견'에 갇힌 K의료

[골든타임 저무는 의료개혁]

◆공공데이터 '보험' 활용 제동

법적·제도적 여건 마련됐지만

"사업적 이용…공공성 훼손된다"

의료계·노조 등 반발에 제자리

핀란드 등은 개방 통해 부가가치

"데이터공백 韓, 활용 시급" 지적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 바이오·헬스 글로벌 중심 국가로의 도약 등을 기치로 내걸고 공공의료 데이터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시범 개통한 ‘건강정보 고속도로(마이헬스웨이)’도 단기 사업 목표는 개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장기 사업 목표는 의료 데이터 개방을 통한 관련 산업 육성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미 법과 제도도 보장되고 정부가 나서서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보험사에는 예외다. 건강보험공단은 보험사의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 심의에 대해 8개월째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의료 업계의 보이지 않는 압박이 규제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의료 데이터 등 보건의료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에 대해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합의점을 찾고 있다. 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데이터 경제 시대, 보건의료 데이터의 보호와 활용’ 토론회에서는 보건의료 데이터의 사회경제적 가치와 활용 필요성이 강조됐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험사를 포함한 민간 회사의 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은 데이터 3법 개정과 법제처 유권해석 등을 통해 제도적 여건이 마련됐다”며 “활용 과정에서의 개인 정보 유출 및 악용에 대한 우려 또한 제도와 기술적 대응을 통해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련기사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에 대한 논의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은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에다 건보공단 노조까지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보험사들이 공공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낮은 질환은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대신 가능성 높은 질환은 가입을 거절하거나 보험료를 인상하는 등 공공의료 데이터를 보험사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활용할 것으로 우려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중재안을 만들고 있지만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이 기존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공공의료 데이터도 기업이 가져가면 공공성이 훼손된다는 이념적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것이다. 정작 공공의료 데이터는 비식별 처리된 가명정보로 개인을 식별해 보험료를 할증하거나 가입 거절 목적 등으로의 활용이 불가하다. 홍 교수는 “보건의료 공공 빅데이터의 민간 활용은 비합리적인 규제와 편견에 갇혀 있으며 마이헬스웨이 사업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논리로 반대한다”며 “주요 반대 논리는 의료 민영화인데 현재 민간이 주도하는 진료와 건강 관리 시장에서 건강 정보 활용은 오히려 건강의 공공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의료 데이터 개방은 의료 소비자들에게도 이득이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오남용에 대한 기우로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자체를 막기보다는 적절한 감시와 강력한 처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박희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공의료 데이터 가용성과 거버넌스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일반 기업과의 데이터 공유 수준이 낮다”며 “개정된 데이터 3법이 시행된 만큼 실질적인 제도의 실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보장을 강화하거나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보험사가 의료 데이터 분석을 통해 에이즈·당뇨 환자가 가입 가능한 보험 상품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 핀란드에서도 헬스케어·바이오 등 혁신 산업 육성을 위해 전 국민 의료 정보를 암호화해 개방하는 등 데이터 개방을 통한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노력 중이다. 약 3조 4000억 건에 달하는 건보공단의 공공의료 데이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국내 보험사들은 지금도 새로운 상품 개발을 위해 해외 논문과 데이터를 뒤지고 있다. 최근 출시된 A 보험사의 당뇨 보험은 캐나다의 당뇨 발생률 데이터를 토대로 보장 조건과 보험료가 책정됐다. 한국인과 캐나다인이 인종과 식생활 등에서 유사성이 떨어지지만 건보공단이 보유한 국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B 보험사 치매 보험의 파킨슨병 보장 특약은 대만의 파킨슨병 발생률 데이터가 활용됐다. 일부 보험사들은 부족한 데이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본의 ‘익명 가공 의료정보 작성 사업자’로부터 데이터를 사온다. 일본에서는 정부 인증만 받으면 데이터를 익명으로 가공할 수 있는 업체들이 의료 정보를 판다.

우리나라 보험사들도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진다면 다양한 상품?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위험이나 신의료 기술을 보장하는 상품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난임 검사?치료, 체내수정 비용 보장 등 여성 전용 신상품이 개발될 수 있고 신항암 치료 수술비를 보장하는 신상품도 개발될 수 있다. 이밖에도 유병자?고령자 등 취약 계층을 위한 혁신 상품을 개발해 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공공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유병자·고령자 보험 개발, 요율 체계 세분화를 통한 합리적 보험료 산출 및 양질의 헬스케어 서비스 제공 등 국민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현진 기자·임지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