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수세 몰린 러 '최후의 일격' 나서나…서방은 "실패 자인한 것"

[푸틴, 결국 군 동원령]

우크라군 빠른 탈환에 위기감

4개 점령지역 주민투표 앞당겨

하원 '총동원령' 추가 형법 개정

언론 "전쟁 격화 발판 마련"평가

"모든 수단 동원"핵사용 가능성

권위회복 위한 '내부용' 분석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공개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사전 녹화된 이날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간) 공개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부분동원령을 발표하고 있다. 사전 녹화된 이날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러시아를 '파괴'하려 한다면서 "방어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부분동원령을 선포하고 돈바스 지역과 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강제 병합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조기 추진하는 등 전면전을 염두에 둔 듯한 공격적 행보에 나선 것은 최근 속도가 붙은 우크라이나군의 탈환전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이 총동원령이 아닌 부분동원령을 내린 것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영토 확보에 필요한 병력을 충원하면서도 러시아 내부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절충안”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이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푸틴 대통령이 그동안 부인해온 국내동원령을 선포할 가능성은 일찌감치 제기돼왔다. 특히 2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과 자포리자주·헤르손주의 친러시아 행정부가 러시아와의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를 당초 예상됐던 11월 4일(국민 통함의 날)보다 한 달 이상 앞당긴 23~27일 일제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혀 전쟁에 새로운 분수령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합병된) 러시아 영토에 대한 침범은 모든 자위력을 동원할 수 있는 범죄”라며 주민투표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 측이 서둘러 영토 합병을 완료한 뒤 편입된 지역에 대한 군사 공격에 대규모 병력과 무기를 동원해 대응하겠다는 최후통첩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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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침공에 앞서 이미 분리주의 반군에 장악됐던 동부 돈바스 지역(DPR·LPR)뿐 아니라 전쟁 직후 점령된 남부 지역 2곳마저 투표를 통해 러시아에 병합될 경우 우크라이나 영토의 15%에 달하는 점령지가 러시아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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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러시아 하원 격인 국가두마도 ‘총동원령·계엄령·전시상황'의 개념을 추가한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러시아가 전쟁 총동원령을 염두에 둔 ‘최후의 일격’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켰다. 개정안은 총동원령 선포 하에서 군복무 의무를 거부하면 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21일 상원 격인 연방평의회에서 통과돼 푸틴 대통령의 서명까지 완료되면 러시아 전역의 대규모 징집에 힘을 싣게 된다.

AP통신은 러시아의 부분동원령 발표 및 주민투표 추진이 “잇따른 우크라이나의 (탈환) 성공 이후 러시아가 전쟁을 격화시킬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지도자들은 러시아 측의 투표 계획이 “가짜이자 불법”이라고 맹비난하는 한편 부분동원령 역시 러시아의 열세를 방증하는 조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 입장은 이런 소음(러시아 측의 투표 계획 발표)에 달라지지 않는다. 단결을 유지하고, 자국을 수호하며, 우리의 땅을 해방시키면서 어떤 약점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격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 역시 푸틴 대통령의 부분동원령 발표를 “전쟁이 러시아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예견된 수순”이라고 평가했다. 미 백악관 역시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사기(sham)”라며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성공적인 공세에 대응하고 동원령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주민투표를 서두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분동원령 발표는 "나약함과 실패를 의미"한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러시아가 강경 행보를 보이면서 전쟁이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크렘린궁의 경고는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에 대응해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면서 ‘자국 방어’를 전술핵무기 발사의 구실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푸틴 대통령의 연설이 우크라이나 영토 병합의 서막으로 여겨지는 점령 지역 국민투표를 며칠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에 대한 추가 공격을 러시아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핵 보복까지 선언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번 동원령이 우크라이나에서의 패배로 상처를 받은 푸틴 대통령이 리더십 회복을 위해 내놓은 내부 다지기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강력한 동원령과 형법 개정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손상된 권위를 재확립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반면 텔레그래프는 “러시아 내 극우 세력이 대규모 동원을 압박해오자 심각하게 힘을 잃은 푸틴이 이러한 요구에 영합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면서 “현재 그는 궁지에 몰려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장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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