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대 반도체 기업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군인 D램 가격이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인플레이션으로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위축되자 D램 시장도 타격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두 회사의 하반기 실적과 설비 투자 계획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23일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4분기 D램 가격이 3분기 대비 최대 18%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들은 3분기 D램 가격 하락 폭이 최대 15%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연말로 갈수록 하향 곡선이 더 가팔라지는 셈이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용 D램의 4분기 가격 하락 폭이 13~18%대로 가장 컸다. PC용 D램은 가격은 10~15%, 소비자용 D램 값은 10~15% 내려갈 것으로 추정된다.
메모리 가격이 줄줄이 하락하자 세계 D램 시장 매출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3분기부터 실적이 크게 꺾일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23일 기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2조 855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73% 감소한 수치다. 또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75% 줄어든 2조 5968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4분기 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이들의 실적 낙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들어 D램 업체들이 가격 하락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IT 시장의 급격한 수요 위축으로 해석된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D램 업체들은 비대면 수요 증가로 노트북PC, 스마트폰, 태블릿PC, 고가의 서버용 메모리가 불티나게 팔리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올해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령으로 공급망 마비 문제가 커져 물가가 치솟는 데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성수기인 4분기 IT 기기 수요까지 줄며 D램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특히 ‘생산 후 판매’ 방식을 택하는 D램 시장은 IT 시장이 급격히 냉랭해질 경우 재고가 단숨에 늘어나 실적 악화로 연결된다. 트렌드포스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연말 성수기 수요가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불황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세우고 있다. 양 사는 내년 설비 투자 계획 세우기 위해 시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설비 투자 계획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운영하는 시나리오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시황 변동에 의존하기보다는 일관된 설비 투자를 고수하는 방침을 세웠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을 총괄하는 경계현 사장은 7일 평택 캠퍼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 업황이) 올해 하반기에 안 좋을 것 같고, 내년도 지금으로서는 좋아질 모멘텀이 보이지 않는다”며 “물론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절하겠지만 기본적 투자 방향은 시황과 무관하게 일관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