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반도24시]핵무기 기정사실화 전략의 저의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핵무력정책 법령 공포한 北 김정은

"비핵화 협상 없다" 대내외에 과시

한미 확장 억제 전략에만 의존해서

우리 생존 담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





잊을 만하면 핵무기 뉴스가 평양발로 보도된다. 북한은 2013년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라는 법령을 발표해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을 천명했다. 하지만 올 4월 조선인민군 창설 90주년 기념식에서는 군복 차림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제 핵 공격 가능이라는 북한판 ‘핵 독트린’을 선언하며 돌변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는 핵 무력 정책을 법령으로 채택해 파문을 일으켰다.




모든 정책은 최종적으로 법령으로 발표하는 것이 북한의 독특한 통치 방식이다. 핵심 이익을 수호하지 못하는 5대 상황에 대해서는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핵 무력 법령은 북핵 보유가 정책적으로 기술적으로 완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의 표현대로 100년의 제재에도 비핵화는 불가능할 것일까? 야금야금 목표에 도달한 핵 무력 법령화를 통한 핵무기 보유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략의 저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핵화 협상은 없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전략이다. 향후 평양은 워싱턴과의 협상에서 비핵화는 국내법상 불가하다는 명분을 축적했다. 핵무기 사용 문턱을 확 낮춤에 따라 비핵화의 문턱은 비례해서 높아지는 만큼 2019년 하노이 협상에서 노딜의 원인이었던 부분 핵 보유 전략은 더욱 공고화될 것이다.


둘째, 유엔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전략이다. 북한은 소련의 권유로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하고 가입했으나 진퇴를 거듭한 후 2003년 NPT 최종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고 핵을 개발한 인도·파키스탄과 달리 북한은 NPT 규정상 탈퇴가 허용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가능한 사유다. 북한은 핵 무력 법령으로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를 중국·러시아의 묵인하에 지속적으로 모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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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론화시키는 전략이다. 핵무기 사용의 5대 조건은 김정은이 결심하면 사실상 선제 사용(first use)할 수 있는 고무줄 기준이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고 한미의 확장 억제 전략이 가동되면 핵무기 사용을 구체적으로 위협하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다. 핵무기가 억제 수단에서 공격 수단으로 전환한 냉엄한 현실을 체감하는 양상이 빈번하게 벌어질 수 있다. 향후 북한의 다양한 핵무기와 투발 수단인 미사일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자주 등장할 것이다.

눈부시게 진화하는 핵무기에 대해 우리의 대응은 역설적으로 무대응 전략이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16년 동안 6차례의 핵실험이 이뤄졌다. 보수 정부는 한미 동맹의 확장 억제 전략, 진보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선의만을 믿었다. 1975년 NPT에 가입한 한국이 북한과 같이 핵 개발을 추진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하지만 빨간불이 켜진 NPT 국제 핵 공조에만 우리의 생존을 담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이뤄진다면 대응책이 한미 확장 억제에만 의존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16년간의 북핵 실험 역사를 따져봐야 한다. 비핵화 협상은 결국 제재를 피하면서 시간 벌기 수단이었다. 일부 정치권은 우리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핵 공유 방식을 검토하는 것은 남북한이 공멸하는 길이라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귀납적으로 북한만 핵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핵 무력 법령화에도 무덤덤한 한국은 일방적으로 평양의 선의만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국경을 맞댄 북한의 핵이 누구에게 위협이 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도쿄도 워싱턴도 아니고 서울이 목표다. 핵을 머리에 이고 살다가 가슴에 안고 사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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