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4개월 연속 대중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대만이 견조한 대중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술력과 시스템반도체 위주의 수출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28일 한국무역협회는 ‘한국과 대만의 대중(對中) 무역구조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5월 이후 4개월째 적자를 내고 있는 이유와 관련해 무협은 디스플레이·석유제품·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의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리튬이온배터리 및 연료, LCD 등 중간재의 수입이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8월 들어 대중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 감소했다. 중국 반도체 장비의 자급률이 상승하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현지생산이 확대되면서 반도체 및 장비 수출이 줄어든 것이다.
반면 대만은 중국의 봉쇄조치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경색에도 안정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는 중이다. 8월 미국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은 보복조치로 대만에 각종 경제제재와 군사적 위협을 가했는데, 오히려 대만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21.8% 증가했다.
중국은 올들어 자급률 상승과 수출 호조, 수입 둔화로 미국과 독일에 대한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적자 폭을 줄이고 있지만, 대만에 대해서는 무역적자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만의 대중 수출에서 반도체 등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83.4%에 달하고, 중국은 전자 및 기계제품 등 중간재를 대만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양국 경제구조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만이 대중 무역 수지 흑자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대만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 기술력과 위탁수요 증가다. 또 수출에서 시스템반도체의 비중이 크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대만 파운드리 4개사(TSMC·UMC·PSMC·VIS)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기준 64%에 달한다. 올해 1~8월 대만의 대중 반도체 수출에서 시스템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73.8%다. 대만은 반도체 제조의 마무리 단계인 후공장(패키징 및 테스트)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팹리스-파운드리-후공정으로 연결되는 반도체 생태계를 자국 내 구축했다는 것이 무역협회의 설명이다. 시스템반도체 설계업체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만은 대중 반도체 수출액에서 메모리반도체 위주인 한국을 2019년부터 추월했다.
대만은 미국의 수출통제로 인한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대중 수출 증대의 기회로 활용했다. 이에 중국의 시스템 반도체 조달은 대만으로 집중됐고, 메모리반도체가 강한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 주요 수요처였던 중국 화웨이의 구매 중단 등으로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이 떨어졌다.
아울러 대만정부는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과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지원과 덥루어 중국의 성장 둔화, 인건비 상승 및 미중 통상마찰 등으로 대만 기업의 본국 회귀 및 글로벌 기업의 대만 이전 사례가 늘어났고, 이는 대만의 수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정만기 무역협회 부회장은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생산 전 범위에 걸쳐 튼튼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어, 미·중간 패권다툼 속에서 수출과 무역수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안보 측면에서도 국익을 지키는 전략적 무기가 되고 있다”며 “우리로선 메모리반도체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시스템반도체와 반도체 장비 경쟁력을 높여가는 등 균형잡힌 반도체 산업성장을 추구해가는 한편, 중국과의 분업체제 내에선 기술력이 관건인 만큼 기업의 R&D 투자 확대와 생산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정부 R&D 지원체제를 지속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