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英 감세 철회에 시장 안도했지만…"금융발작 언제든 재연"

■살얼음판 글로벌 금융시장

파운드화 반등하며 코스피 2200선 회복 등 亞증시 일제 상승

감세철회 450억 파운드 중 4%뿐…英 쌍둥이 적자 해소 안돼

"통화약세 베팅 투자자 늘어…과감한 부채감축 없으면 또 요동"

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한 대규모 감세안을 일부 철회한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이 3일(현지 시간) 버밍엄에서 열린 집권 보수당 연례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글로벌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한 대규모 감세안을 일부 철회한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이 3일(현지 시간) 버밍엄에서 열린 집권 보수당 연례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 정부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던 감세안을 일부 철회하면서 영국 국채금리와 파운드 가치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도 일단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감세 철회가 당초 감세 규모의 4%에 지나지 않고 만성적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영국에서 최근에는 경상수지 적자 폭까지 확대되는 등 영국발 금융위기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외신들은 영국이 공공지출 축소 등 강도 높은 ‘허리띠 졸라매기’를 통해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지 않는 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소득세 최고세율 45% 철폐 계획을 철회하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해소됐다”면서도 “리즈 트러스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감세안 발표 직후 파운드당 1.06달러까지 폭락한 파운드 환율은 이날 소득세 감세안 철회 발표 후 1.13달러까지 상승해 감세안 발표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1달러=1파운드를 의미하는 패리티 위험에서는 일단 벗어난 것이다. 4.49%까지 치솟았던 영국의 10년물 국채금리도 3.94%로 하락하며 하향 안정화됐다.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도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가 2.66% 상승한 2만 9490.89로 거래를 마치는 등 3대 지수가 일제히 2%대 오름폭을 보였다.



영국발 호재에 아시아 증시도 모처럼 웃었다. 4일 코스피는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전 거래일보다 53.89포인트(2.50%) 오른 2209.38에 마감해 4거래일 만에 2200선을 회복했다. 코스닥지수도 전장보다 24.14포인트(3.59%) 오른 696.79에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 종가보다 2.96%, 토픽스지수는 3.21% 뛰었고 대만 자취엔지수도 2.08% 상승 마감했다. 중국 증시는 국경절로 휴장했다.



다만 감세 철회의 약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감세 철회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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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철회한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로 인한 감세 금액은 20억 파운드로 추정된다. 당초 발표한 감세 규모(450억 파운드)의 4.4%에 불과하다. 대규모 감세로 인한 재정위기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미미한 금액이다. 영국 자산운용사 블루베이의 포트폴리오매니저 닐 메타는 블룸버그통신에 “영국 정부가 경제정책의 방향을 바꾸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 파운드 가치 상승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무라의 외환전략가인 조던 로체스터도 FT에 “정부 재정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기에는 부족한 조치”라며 “최고세율 폐지는 감세안 중 가장 상징적인 조치여서 주목받았지만 감세 규모로는 가장 작은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이 제2차 ‘구제금융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의 배경에는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재정적자+경상수지 적자)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D2) 비율은 154.4%로 OECD 평균(130.4%)을 크게 웃돈다. 2013년 남유럽 재정위기를 촉발했던 이탈리아(183.9%)나 그리스(243%)보다는 낮지만 안심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보수당 내각이 여전히 감세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 영국중앙은행(BOE)이 내년 5월까지 현 2.25%인 기준금리를 6.25%로 올릴 것으로 전망되는데, 기준금리가 오르면 정부의 이자 부담이 커져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경상수지 적자도 골칫거리다. 영국은 올 1분기와 2분기 각각 438억 6000만 파운드, 337억 7000만 파운드라는 기록적인 적자를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적자 규모가 3~5배 불어난 것이다. 특히 1분기 적자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영국은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에도 외부에서 유입되는 부동산 및 금융 투자 자금 덕에 대규모 외환 유출을 겪지 않았지만 파운드화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부동산 시장이 냉각돼 외부 자금 유입이 끊기면 심각한 외환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아왔다.

씨티그룹의 외환전략책임자인 바실리오스 지오나키스는 FT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영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를 주시하면서 파운드화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은 조만간 영국 정부가 내놓을 부채 감축 계획을 주목하고 있다. FT는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이 당초 일정보다 한 달 앞당긴 이달 말에 중기 재정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획기적인 부채 감축 방안이 포함되지 않으면 시장은 또 요동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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