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IB&Deal

[시그널] 황소개구리된 한전채…민간기업 자금 조달에 불똥

한전 발행량 1년치 회사채 30% 물량 육박

연 5.65% 고금리에도 물량 넘쳐 흥행실패

현대차·SK하이닉스 등 회사채 발행 좁아져





역대 최고 적자를 내고 있는 한국전력이 한해 회사채 물량의 30%를 고금리로 쏟아내면서 이들보다 조건이 나쁜 민간 기업 회사채도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올해만 23조 원에 육박하는 한전채가 시장에 풀렸는데 AAA등급에 연 5.65% 금리를 붙이고도 흥행에 실패했다.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이날 5000억 원 규모 한전채 발행을 위해 기관 투자가들을 상대로 입찰을 실시했다. 2000억 원 규모로 모집한 2년물과 3년물에 각각 2500억 원, 1000억 원이 들어왔으며 5년물은 투자 수요가 없어 발행하지 못했다. 금리는 2년물 5.55%, 3년물 5.65%로 결정됐다.

한전은 지난 4일에도 시장을 찾아 5000억 원을 조달하려고 했으나 3800억 원 어치 주문만 받아 목표치에 미달했다. 지난 8월에는 총 3조 원 어치 한전채를 발행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의 잇따른 자이언트 스텝으로 조달금리는 5% 중반대를 넘어섰다. 한전채 발행 금리가 5%대 중반까지 오른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올해 한전이 시장에서 발행한 채권은 22조8900억 원 규모로 2021년 10조3200억 원, 2020년 3조4200억 원 대비 급증했다.



한전이 올해 대규모 고금리 채권을 쏟아내면서 상대적으로 민간 기업들의 자금 확보는 어려워졌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통로인 회사채 시장은 연간 60조 원 규모인데 한전이 연간 회사채 발행량의 1/3을 넘어서는 채권을 찍어내면서 회사채 투자 자금 대부분이 소진된 것이다. 한전채는 특수채로 분류되나 회사채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같은 회사채투자처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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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신용도는 대한민국 정부 신용도와 같은 'AAA'급인데 국내 기업 가운데 이정도 신용도를 보유한 곳은 SK텔레콤과 KT 뿐이다. 현대차와 SK하이닉스(000660) 등 대기업도 'AA' 정도에 그친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전이 연 5%가 넘는 채권을 쏟아내면서 국내 기업들은 이보다 높은 금리를 줘야 투자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그러나 경기 침체 우려로 내년 기업들의 실적 악화까지 예상되면서 회사채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금융위원회는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원활히 하기 위해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운영 중이지만 기업들에겐 이조차 여의치 않다. 산업은행이 발행물량의 대부분인 70~80%를 인수해주는 제도지만 현재 시장 상황에서는 나머지 20~30% 물량도 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겨우 투자자를 찾는다 해도 연 5%가 훌쩍 넘는 금리를 감당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6일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수요예측을 진행한 LS전선은 2년물 5.492%, 3년물 5.374% 선으로 발행을 확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회사채 시장은 2017년 이후 5년 만에 순발행에서 순상환으로 전환할 전망이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 있는 빚을 갚는 데 급급하다는 뜻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발행 규모는 5조3438억 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1월(8조7709억 원)과 비교하면 39.1%, 지난해 같은 달(8조4950억 원)보다도 37.1% 급감한 수준이다. 지난달 에쓰오일(500억 원)과 SK하이닉스(1400억 원), 한화(000880)(900억 원) 등에 이어 이달 파라다이스(034230)(1000억 원), 포스코케미칼(003670)(1300억 원) 등도 보유한 현금을 활용해 회사채를 상환했다.

은행채 발행량이 급증하는 것도 회사채 시장에 부담이다. 지난달 은행들의 은행채 순발행액은 7조4600억 원으로 지난 7월(7조9880억 원) 이후 가장 많았다. 많은 기업들이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로 선회하면서 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자산건전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선제적인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건전성 관리를 위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순현금 유출액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은행들은 현재 92.5% 수준인 LCR 비율을 내년 상반기까지 100%를 맞춰야 한다. 한 대형 증권사의 자금조달 담당 임원은 "올해 금리 인상으로 채권 시장 변동성이 급격하게 커졌다"며 "여기에 신용도가 높은 한전채나 은행채가 시장에 쏟아지면서 채권 가운데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회사채 투자 심리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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