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경찰에 신고까지 한 여성이 백주대낮 도로에서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신당역 스토킹 사건에 이은 비극으로 경찰의 피해자 보호조치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가정폭력 신고를 받은 경찰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응급조치 △임시조치 △긴급임시조치 등이 있다. 경찰은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및 범죄수사, 피해자 동의시 상담소·보호시설 인도, 긴급치료 필요시 의료기관 인도 등 응급조치에 나설 수 있다. 임시조치는 피해자 또는 가정구성원의 △주거 또는 방실로부터 퇴거 등 격리 △주거, 직장 등에서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조치 △가해자의 의료기관 및 요양소 위탁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이다. 판사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임시조치를 결정한다.
경찰은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긴급을 요할 경우 주거 또는 방실로부터 퇴거 등 격리 및 주거, 직장 등에서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을 직권으로 실시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피해자 보호대책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가해자가 경찰의 긴급임시조치에도 이를 위반하고 피해자에게 접근할 경우 이를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충남 서산에서 살해당한 40대 여성A씨는 그동안 4차례에 걸쳐 경찰에 남편 B씨의 가정폭력을 신고했다. 첫 신고가 접수된 지난달 1일 이후로 경찰은 B씨와 A씨를 분리 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B씨가 재차 A씨를 찾아가 상해를 입히자 경찰은 법원에 피해자 보호명령을 신청해 승인받았다. A씨는 경찰의 스마트워치를 지급받고, 법원은 B씨에게 접근 금지 등의 피해자 보호명령을 내렸지만 비극을 막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가정폭력 가해자 현행범 체포 등 더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응급조치에 가해자를 체포할 권한이 없는 만큼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사건 초기부터 철저하게 분리하는 제도가 마련된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다수 주에서 가정폭력범죄자 에 대한 의무체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중재나 상담을 통한 가정폭력 사건 해결방안이 피해자를 오히려 위험에 빠드리게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 해당 제도를 정착시켰다. 미국은 의무체포 제도를 통해 가정폭력 재발 방지에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과 영국 경찰 역시 응급조치를 위반한 가정폭력 가해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고 있다. 치안정책을 연구하는 한 연구원은 "해외 사례는 경찰이 응급조치를 위반한 가해자에게 현장 체포와 구금의 강제력을 행사해 피해자 보호조치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