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님. 콘돔, 핑거돔, 생리컵, 생리대, 외음부세정제, 윤활제 중에 하나라도 주기적으로 쓰시나요? 그리고 요런 용품들을 동물 실험 없이, 지구에도 덜 폐를 끼치면서 만들 수 있단 사실을 아시나요?
일상적으로 쓰는 생리용품, 성생활용품들을 ‘잘’ 만드는 회사를 찾던 중에 인스팅터스를 만나게 됐어요. 비건 콘돔으로 알려진 ‘이브 콘돔’, 바로 그 회사에요. 지금은 ‘체레미 마카’라는 브랜드 아래 이전보다 다양한 제품을 판매 중(홈페이지는 여기). 특히 콘돔이 제일 잘 팔린다는데요. 그런데 완전무결한 100% 비건 콘돔이냐고 물으신다면...인스팅터스의 성민현 대표님, 박홍주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장님과 나눈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체레미 마카’는 한국어래요
체레미(강원도 방언, ‘그대로’)+마카(충북 영동 방언, ‘모두’)=‘그대로 모두’라는 뜻. 성별·나이·성적지향·장애 구분 없이 모두가 그대로 본연의 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섹슈얼 헬스케어 솔루션을 만든단 포부를 담았대요. 콘돔 구매조차 쉽지 않은 청소년, 무성의 존재처럼 여겨져 온 장애인, 사회적 시선 때문에 적극적으로 피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여성, 사랑할 권리마저 지탄받는 성소수자 등등 모두를 위해서요.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콘돔 자판기를 설치하기도 했고(현재는 전부 회수, 리뉴얼 중) 서울퀴어문화축제에 후원도 하고 있어요.
완전한 비건 콘돔을 찾아서
에디터는 체레미 마카 콘돔이 100% 비건인지가 제일 궁금했어요. 왜냐면 ‘이브 콘돔’ 시절 국내 최초의 비건 콘돔으로 샛별처럼 부상했는데 요즘엔 홈페이지에도 비건이란 언급을 찾아보기 어려웠거든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콘돔은 토끼 등 동물 실험을 거쳐서 만들어져요. 1년 전쯤 지구용에서 동물 실험 없는 생리용품(다시보기)을 소개하느라 어떻게 실험을 하는지 좀 찾아봤는데...끔찍하더라고요. 토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콘돔이나 생리용품이 있다면 좀 비싸더라도 기꺼이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요.
체레미 마카의 콘돔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고 페타(PETA,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보호단체)의 비건 인증도 국내 최초로 받았어요. 그런데 좀 복잡한 게, 어떤 콘돔이라도 최초의 동물 실험 1회 만큼은 피할 수 없어요. 콘돔은 ‘성병 예방과 피임을 위한 의료기기’로 분류돼서 동물 실험+생물학적 안전성 입증을 거치지 않으면 판매 허가를 받을 수 없거든요. 미국, 유럽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최초의 동물 실험 이후 추가로 동물 실험을 하지 않으면 PETA 비건 인증을 받을 수 있어요. 윤활제도 마찬가지.
인스팅터스는 해외 공장(OEM 제조사)에서 과거에 받아둔 동물 실험 결과로 판매 허가를 받은 이후 추가 실험을 하지 않았어요. 요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예를 들어서 소비자가 ‘콘돔에서 고무 냄새가 난다’고 하면 어지간한 콘돔 제조사들은 고무 냄새를 줄이는 향료를 추가하는 등등 제품을 ‘개선’하느라고 또 동물 실험을 하거든요. 원료가 바뀌거나 추가될 때마다 동물 실험을 해야 된다는 규정 때문에요. 그치만 인스팅터스는 “소비자 컴플레인이 발생해도 원료를 바꾸지 않는 길을 택한다”는 성대표님의 단호한 답변. “소비자에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주 약간의 만족감 향상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하셨어요.
불쌍할 토끼들을 구할 대안
최초의 동물 실험을 피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인스팅터스는 단 1회의 동물 실험이라도 없애려고 노력 중이에요. PETA가 전세계 기업들과 손잡고 운영 중인 컨소시엄에서 활동 중(아시아 기업으로선 유일!)이거든요. 이 컨소시엄의 목표는 동물 희생 없는 대체 실험(미니 장기, 장기칩 관련 기사 읽기)만으로 생물학적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단 사실을 입증하는 거예요.
우리 몸에 직접 닿는 물건들이니까 퀄리티도 당연 중요. 각 제품별로 “왜 체레미 마카여야 하는지” 여쭤봤더니 이렇게 요약해 주셨어요.
▶콘돔 - 0.035mm(국내 식약처가 규정한 라텍스 콘돔 최소 두께인 0.03mm에 초근접)의 두께, 시중 제품 대비 약 2배 풍부한 윤활제. 파라벤·합성착향료·합성착색료 등 유해 화학물질 없음. 콘돔은 남성이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스팅터스 제품은 여성 구매가 남성 대비 1.3배 더 많은 이유. 그리고...혼농임업(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윤활제 - 의료등급 실리콘과 알로에베라잎수(특 : 비건+유기농원료 사용+유전자변형식품 안씀을 의미하는 유럽 COSMOS 인증 획득)로 만들었고 세상 촉촉한 사용감. 성관계 때뿐만 아니라 생리컵을 쓸 때 같이 써도 되고요.
▶생리대 - 미국 텍사스 유기농법(농약, 화학 비료 등 사용 X)으로 재배한 목화를 사용한 100% 유기농 순면커버 생리대. 완전무염소표백으로 유해물질or피부자극 최소화.
▶외음부세정제 - COSMOS 인증을 받은 유기농 녹차추출물 58%와 다양한 식물성 오일 함유. 제품명이 ‘여성청결제’인 이유는 ‘외음부세정제’로 포털에서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 결과를 제외했다’는, 연령 확인이 필요하단 메시지가 뜨기 때문이에요. (더 자세한 내용은 박진아 공동대표님의 이전 인터뷰)
▶생리컵 - V자 모양으로 입문자도 삽입이 쉽고 3가지 사이즈. 100% 무독성(=환경 호르몬 걱정 없음) 실리콘 소독컵으로 쉽고 위생적으로 소독·보관 가능.
◆혼농임업이 뭐죠?
보통 고무든 뭐든 작물을 대량 생산하려면 산과 숲을 밀고 해당 작물만 주구장창 심는 게 일반적이에요. 반면 혼농임업은 필요한 작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물을 함께 재배해서 산림 생태 다양성을 보존하는 방식. 염소 같은 동물도 함께 기르고요. 낙엽과 가축 분뇨가 천연 비료가 되어주는 덕분에 토양이 더 비옥해져요. 그래서 ‘되살림 농업’이라고도 해요. 국내 콘돔 시장에서 혼농임업으로 생산된 고무를 쓰는 기업은 인스팅터스가 유일. 당연히 유기농. 혼농임업+아동·노동 착취가 없음을 의미하는 RRI(Regenerative Rubber Initiative) 인증도 국내 최초로 받았어요. (혼농임업 더 알아보기)
인스팅터스는 올해 경기도 하남에 의료기기 제조 연구소를 완공했대요. 원래 제품 연구·개발·제조·생산을 해외 OEM사에서 진행했는데 내년 하반기부턴 전부 이 연구소에서 이뤄질 예정.
우리 몸을 위한 선택
마지막으로 하나 더. 세정제, 젤 같은 일부 제품은 펌프용기에 담겨있어요. 펌프는 복합 소재(플라스틱+철제 스프링 등)라 재활용이 어렵고 그래서 좀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혹시나 교체 계획이 있는지 여쭤봤더니, 박 팀장님은 “포장재도 앞으로 눈에 띄게 개선할 예정”이라고 하셨어요. 인스팅터스는 2025년까지 이런저런 중장기 목표(자세히 보기)를 세워두고 있는데, 포장재와 관련해 재활용이 용이한 원부자재 사용률을 95%까지 올린단 내용도 포함돼 있거든요. 펌프를 제외한 현재의 포장재는 재활용이 쉬운 종이(비닐 사용 X), 투명 플라스틱. 재활용이 더 잘 되는 투명 페트(PET) 용기도 고려 중이시래요.
에디터는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인스팅터스의 문화에도 감명을 받았어요. 성교육 강사, 약사, 비건, 동물권 활동가, 오픈리 퀴어 등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들(이 쓰는 블로그 읽다 두시간 순삭..유교걸로서 심장이 뛰었어요...)로 이뤄졌고 사내 규정도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같은 대단히 선진적인 내용들로 채워진 거예요. 직원들 HPV 백신(자궁경부암 백신이라고 보통 부르는데, 남성 질환도 예방해줘서 누구나 맞아야 하는 백신이에요) 접종비도 지원하고, 중장기 목표 중엔 2025년까지 직원 연봉을 평균 40%(2021년 대비) 올린단 내용도 있고요. 이런 멋진 회사라니...전우주로 뻗어나가길 다같이 응원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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