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랭킹 4위 패트릭 캔틀레이(30·미국)는 현재 미국 골프의 아이콘 중 한 명이다. 지난해 6월부터 올 8월까지 1년여 동안 올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승수만 5승. 지난해 9월에는 플레이오프 최종전 우승으로 시즌 챔피언에 오르면서 1500만 달러(당시 약 175억 원)를 거머쥐기도 했다. 캔틀레이의 최대 강점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다. 그래서 별명도 ‘아이스’다.
10일(한국 시간) 미국 네바다주 TPC 서머린(파71)에서 열린 PGA 투어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 4라운드. 17번 홀까지 김주형(20·CJ대한통운)과 24언더파로 맞서 연장행 분위기가 감돌 즈음 캔틀레이의 큰 실수가 나왔다. 18번 홀(파4) 티샷이 왼쪽으로 감겨 거친 관목들 사이의 흙바닥에 떨어진 것. 15·16번 홀 연속 버디로 맹공을 퍼부었는데도 스무 살 신예 김주형은 흔들리는 기색조차 없었고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 ‘아이스’에 균열이 생겼다.
어려운 상황을 한 번에 탈출하지 못한 캔틀레이는 1벌타를 택해 조금 나은 곳에 드롭하고 네 번째 샷을 했지만 이번에는 짧아서 물에 빠졌다. 6온 1퍼트로 트리플 보기. 이 사이 김주형은 무난하게 파를 지키면서 3타 차 우승을 완성했다. 최종일 버디만 5개로 5언더파 66타를 치는 등 나흘간 버디만 24개의 노 보기 우승(24언더파 260타)이다.
두 달 만에 다시 선 정상이자 최근 4개 대회에서 2승. 2021~2022시즌인 8월 윈덤 챔피언십에서 비회원 신분으로 깜짝 첫 우승을 했던 김주형은 공식 데뷔 시즌인 2022~2023시즌의 첫 출전 대회에서 또 우승해버렸다. 우승 상금은 144만 달러(약 20억 원)다. PGA 투어에서 21세 미만이 2승을 거둔 것은 김주형이 역대 세 번째다. 1996년 타이거 우즈(미국) 이후 26년 만의 기록으로 2승 당시 우즈는 20세 9개월 21일, 이날의 김주형은 20세 3개월 18일이다. 20세 1개월 17일에 PGA 투어 첫 승을 올리면서 우즈의 기록인 20세 9개월 6일을 앞질렀던 김주형은 또 한 번 우즈의 기록을 넘어서며 세계 골프를 충격에 빠뜨렸다. 72홀 노 보기 우승도 1974년 리 트레비노(미국), 2019년 JT 포스턴(미국)에 이어 역대 세 번째 나온 진기록이다.
김주형은 “우상 우즈의 기록과 비교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면서 “눈 깜짝할 새 모든 일이 벌어졌다. 임시 회원이 되고 윈덤에서 우승하고 플레이오프를 뛰고 프레지던츠컵(미국과 세계연합 간 대항전)에 나갔다. 그리고 오늘은 두 번째 우승을 했다”며 감격해했다. “그저 최선을 다해 경기했을 뿐이며 이 바쁜 시기를 즐기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며 계속 우승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 대회 전에 약간 감기 기운이 있어 연습 라운드를 9홀만 돌았는데 그래서 더 집중해서 코스를 파악하고 연습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날 캔틀레이와 공동 선두로 출발한 김주형은 전반에 버디 3개로 기선을 제압했다. 이후 캔틀레이가 연속 버디로 동타를 만들자 김주형은 13·14번 홀 버디로 다시 달아났다. 캔틀레이는 15·16번 홀 버디로 ‘클래스’를 증명했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넘어져 매슈 네스미스(미국)와 같은 21언더파 공동 2위에 만족해야 했다.
2주 전 프레지던츠컵에서 클러치 퍼트와 모자를 벗어 던지는 격한 세리머니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김주형은 그 기세 그대로 PGA 투어 새 시즌을 열어젖혔다. 세계 랭킹을 21위에서 15위로 끌어올려 마쓰야마 히데키(일본)를 밀어내고 아시아 선수 최고 랭커가 된 그는 이제 이번 주 일본에서 치를 조조 챔피언십에서 연승에 도전한다.
김주형은 “우즈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저스틴 토머스(미국) 같은 선수들과 비교하면 나는 이제 시작이다. 그저 열심히 연습할 뿐”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디즈니랜드에 온 다섯 살 꼬마라고 보면 된다”고 말할 때는 별명인 곰돌이 푸처럼 해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