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에서 차지하는 변동금리대출 비중이 미국은 10%도 미치지 못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60%가 훨씬 넘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의 50bp(1bp는 0.01%포인트) 금리 인상은 미국의 75bp 인상에 버금가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창용 총재는 15일(현지시간)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글로벌 통화정책 긴축 강화와 한국의 통화정책’에 대해 강연을 통해 두 번의 빅스텝을 밟게 된 배경을 밝혔다. 한은은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7월과 10월에 각각 금리를 50bp씩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먼저 7월 빅스텝을 한 것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까지 높아지고 근원인플레이션과 단기 기대인플레이션도 4%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고물가 상황 고착화를 막기 위한 강한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한은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상 처음으로 소위 빅스텝을 하면서 큰 폭의 금리 인상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빅스텝 결정 당일 ‘당분간 금리를 베이비스텝(금리 0.25%포인트 인상)으로 인상해 나가겠다’라는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적 정책방향 제시)도 제시했다. 이를 두고 이 총재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강조했던 과거 관행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했다.
이 총재는 베이비스텝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그는 “첫째, 유가 하락 등으로 물가가 3% 정도로 하향 안정화될 것이란 전망에 금융시장이 역사상 처음 50bp 인상된 사실에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라며 “둘째는 지난 1년간 정책금리를 빠르게 인상(+125bp)한 데 따른 영향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셋째로는 미국의 경제여건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낮은 편이며 노동시장 과열도 덜한 상황이어서 연속 빅스텝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총재가 포워드 가이던스를 발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잭슨홀 경제심포지엄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금리 인상 가속 기대가 크게 강화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졌다. 이 총재는 “파월 의장의 잭슨홀 연설은 어느 정도 예견된 내용이었으나 9월 연준의 점도표로 나타난 연준의 2022년 말 금리는 한은이 생각했던 수준보다 50bp 이상 높아진 수준이었다”라며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도 크게 증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은이 10월에 다시 한번 빅스텝을 한 것은 25bp씩 올리겠다는 전제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구체적으로 글로벌 성장률 하락 전망으로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높아졌으나 예상 밖 환율 상승으로 5~6%대 높은 물가 수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한은은 특정 수준의 환율을 방어하려 하진 않지만 급격한 환율 변동이 자본유출 압력 증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엔 금리 인상 폭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 총재는 “11월 미 연준의 결정, OPEC+의 감산 등에 따른 에너지 가격 움직임, 중국 당 대회 후 제로 코로나 정책의 변화 가능성, 엔화와 위안화의 변동성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총재가 당분간 25bp씩 금리를 올리겠다고 하면서 한미 역전 폭이 커질 수 있다는 기대를 키우면서 원화 절하를 심화시켰다는 비난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할 때 9월 FOMC 결정을 보고 다시 고려할 것이라고 조건부를 이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강조하기 위해 “한은은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지만, Feb로부터는 독립돼 있지 못하다”라는 말로 설명도 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포워드 가이던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지난 베이스라인 시나리오를 조건부로 받아들이기보다 서약(commitment)이나 약속(promise)으로 여기는 것 같다”라며 “미래 금리 경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오랜 방식에서 벗어나기에는 현실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여러 가지 애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