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미국을 택하는 것은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 세계적으로 더 나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달 6일(현지 시간) 뉴욕 IBM 연구센터에서 ‘반도체산업육성법(CHIPS)’을 홍보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520억 달러(75조 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골자로 한 이 법이 발효되면서 마이크론·TSMC 등 10여개의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이 앞다퉈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등에 업은 북미 정계 인사들도 적극적인 세일즈 외교를 펼치고 있다. 올 8월 미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시행에 들어간 뒤 팻 윌슨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 더그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등이 ‘K배터리’ 유치를 위해 앞다퉈 한국을 찾았다. 듀시 주지사는 방한 직전 대만을 들러 반도체 협력사를 모색하기도 하는 등 미국 주정부들의 투자 유치전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반도체·배터리 등 자국 경제를 책임질 미래 산업 관련 기업들을 자국으로 유인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6년부터 ‘셀렉트 USA 서밋’을 열어 투자 유치에 몰두해온 미국 정부는 최근 CHIPS·IRA 등으로 자국 내 첨단 산업 투자 촉진에 한층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다른 주요국들도 이에 질세라 각종 인센티브를 쏟아내며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올 2월부터 반도체법(Chip Act)을 추진하며 글로벌 반도체 회사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430억 유로(60조 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입법은 내년 이후 완료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새 법안이 제안된 지 몇 주 만에 인텔이 독일 작센안할트주에 170억 유로를 투입해 반도체 공장 허브를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이미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7월에는 스위스 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가 프랑스에 반도체 제조 시설 신설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재정 지원을 예고하며 화답했다.
프랑스의 경우 이와 별도로 2017년부터 해외 투자 유치 정책인 ‘추즈 프랑스(Choose France)’를 통해 투자를 유인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 글로벌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대거 초청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장관들이 직접 이들에게 투자처로서 프랑스의 매력을 전하고 투자를 독려하는 방식이다. 정책 시행 후 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이 프랑스 투자를 결정했으며 올해 들어서도 이 정책을 통해 프랑스가 유치한 신규 투자 규모가 67억 유로, 창출한 일자리는 4000여 개에 달한다.
일본은 아예 반도체 기업의 투자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했다. 경제안보법을 기반으로 6170억 엔(6조 원) 규모의 기금을 마련한 일본은 올 6월부터 9월까지 이 기금을 활용해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기옥시아 등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첫 지원 대상인 TSMC는 구마모토 공장 신설에 필요한 자금의 절반가량인 4760억 엔을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 받는다.
이 밖에 인도도 24억 달러 규모의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소 5기가와트시(GWh)의 배터리 저장 시설을 구축하는 기업이 지원 대상으로 인도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60억 달러 규모의 직접 투자 유치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