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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1.0 'ESC'…경영틀 넘어 新경제질서 중심 'ESG 2.0' [책꽂이]

■넥스트 ESG(최남수 지음, 새빛에듀넷 펴냄)

'왜' 아닌 '무엇을·어떻게'로 진화

정책·금융 등에 확산 2단계 진입

기업의 '정치적 책임'까지 강조돼

기후공시 등 '제도화' 가속이 핵심

인권·노동·제품 안전 문제들 주목

관심 낮았던 'S' 중요도 점점 커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일본 의류 기업인 유니클로는 “러시아인들도 옷이 필요하다”며 영업을 지속했다. 하지만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들끓자 결국 현지 매장 문을 닫았다.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은 러시아 진출 기업의 행태에 등급까지 매겨가며 사업 철수나 축소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예일대측에 따르면 러시아에 진출한 1200개 다국적 기업 중 1000개 기업이 사업 축소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 가운데 아예 사업을 접은 A등급 그룹은 지난 5월 현재 316개에 이른다. 삼성 등 B등급 그룹 453곳은 러시아 복귀 가능성을 열어둔 채 사업을 일시 중단했다. 신규 투자 중단 등과 같은 소극적인 조치도 없이 이전처럼 사업을 지속하는 F등급 기업은 218개에 그쳤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가운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영역이 ‘정치적 책임 활동’(CPR)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신간 ‘넥스트 ESG’는 이처럼 2단계에 접어든 ESG 경영의 현황과 기업의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저자는 언론인 출신의 ESG 전문가인 최남수 서정대 교수다. 그는 1단계가 투자자들의 요구로 시작했다면 이제는 정책·금융·신용평가·소비자 등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넘어 신(新)국제경제질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본다. “ESG 경영이 ‘제1막’에서 ‘제2막’으로 전환하고 있다.”



저자는 넥스트 ESG의 특징으로 △기후공시 등 제도화 △공급망 압박 본격화 △‘S(사회)’에 대한 주목도 상승 △ESG워싱 및 그린워싱(환경친화적이지 않는데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 규제 시동 △ESG경영 성과 차별화 등을 제시한다. 이 중 핵심은 지속가능성, 기후 공시, 공급망 규제 등의 측면에서 전방위로 가속화하고 있는 ESG 제도화다. 그동안의 논의가 ESG를 ‘왜’(Why) 하는 지에 그쳤다면 이제는 ‘무엇을(What)&어떻게(How)’ 하느냐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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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유럽연합(EU)이 공급망 안에서 인권 침해나 환경 훼손 등 등을 실사하는 내용의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을 발표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는 물론 인권과 환경 보호를 위한 지렛대로 ESG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EU는 역외에서 발생한 환경 훼손 등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해당 기업을 EU 기관에 제소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기업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최근 상장사들의 탄소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하는 기후 공시 방안 초안을 발표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스탠다드차터드가 다국적 기업 400곳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10곳 중 8곳은 2025년까지 저탄소 이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급업체를 교체할 계획이다. 현재 협력업체 중 35%를 퇴출한다는 얘기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는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이 국내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협력사와 계약 때 해당 기업의 인권과 윤리경영을 평가해 반영하는 비율은 8.7%에 불가했다.

또 저자는 그동안 ‘E(환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았던 ‘S’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S’는 인권, 노동, 근로자 건강, 제품 안전과 질,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 여성 차별, 개인정보 보호 등을 광범위한 이슈를 포괄한다. ‘E’나 ‘G’에 비해 기업이 노력한다 하더라도 지표로 측정하기 어렵고 평상시에는 문제점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문제가 터지면 기업을 순식간에 위험을 빠트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최 교수는 사실상 ‘G(지배구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E’와 ‘S’에 대해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하려면 기업이 투명하고 건전한 윤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책은 법원의 개입, 녹색·사회·지배구조 택소노미(분류체계) 등 최근 ESG 핵심 이슈도 분석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ESG는 아직 기업경영과 자본, 금융 시장의 영역이지만 유럽에서는 법원도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 11월 네덜란드 환경단체는 자국 정부의 탄소 감축 계획이 너무 약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6년 뒤 대법원은 승소 판결을 확정했고 네덜란드 정부는 그대로 집행했다. 지난해 독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밖에 저자는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업에서 재생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한 덴마크 오스테드 △창업 때부터 환경보호를 핵심 가치로 삼은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영국의 친환경 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 등의 사례를 분석해 지속가능성과 성장성, 수익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이 같은 ESG 경영의 확산을 주주자본주의 등 신자유주의 퇴조의 측면에서 진단한다. 신자유주의가 양극화 심화, 환경 파괴 등 각종 부작용을 양산하자 주주는 물론 고객·근로자·협력업체·지역사회 등을 함께 존중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8월 미국 재계 단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며 주주에 대한 다짐을 이해관계자 중 맨 마지막 순위에 놓은 것은 상징적인 사례다.

“환경과 사람을 돌보는 투명한 기업 경영은 인류 생존과 사회·경제 통합력 유지를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ESG라는 공감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1만8000원.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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