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만 ㎞나 달린 중고 푸드트럭을 300만 원을 주고 산 게 첫 시작이었죠. 지금은 ‘아시아의 관문’인 싱가포르 창이공항 입점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여자 친구에게 돈을 빌려 피자 가게를 차린 뒤 5년 만인 지난해 연 매출 100억 원을 달성한 사장이 있다. 주인공은 1인용 피자 프랜차이즈 ‘고피자’를 운영하는 임재원(33·사진) 대표다. 2016년 서울 여의도 야시장 푸드트럭으로 출발한 고피자는 현재 국내는 물론 인도·싱가포르·홍콩·인도네시아에서 160여 개 매장을 운영하며 ‘피자계의 맥도날드’가 되겠다는 꿈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최근에는 투자 혹한기임에도 미래에셋증권과 GS벤처스·CJ인베스트먼트 등이 참여한 25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1인용 피자’로 외식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임 대표를 24일 서울 마포구 고피자 본사에서 만났다. 엔데믹(풍토병) 전환 이후 한 달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낼 정도로 바쁜 그이지만 회사의 가파른 성장세에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고피자는 국내에서 1인용 피자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다. 크기는 딱 1인분이다. 가로 25㎝에 세로 17㎝ 크기로 5조각이다. 가격은 사이즈가 작은 만큼 저렴하다. 대표 메뉴인 클래식 치즈 피자의 가격은 5400원으로 햄버거 수준이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면서 고피자의 국내 매장 수는 2017년 대치동에 한 평짜리 1호점을 낸 지 약 5년 만에 100여 개를 돌파했다.
임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KAIST에서 경영공학을 공부한 일명 ‘고스펙자’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컨설팅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20대 대학원생이 돌연 피자 가게를 차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들이 피자를 사와 한 조각에 2달러씩 팔곤 했어요. 어린 나이에도 문득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 대표는 KAIST를 졸업한 뒤 한국의 한 스타트업에 들어가 근무를 하며 창업의 꿈을 키웠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시절, 젊은 직원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똘똘 뭉치는 열정적인 모습에 “내가 회사를 이끌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자칭 ‘피자 덕후’였던 임 대표는 국내에 1인용 피자 시장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피자도 햄버거처럼 싸고 빠르게 먹을 수는 없을까.” 2010년대 초반 국내 피자 시장은 도미노·피자헛 등 글로벌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판매하는 ‘한 판에 2만 원’짜리 패밀리 사이즈가 대세였다. 1인 가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피자도 패스트푸드처럼 즐기게 될 것이라는 게 임 대표의 생각이었다. 그 길로 대형마트로 달려가 밀가루와 오븐을 샀다. 집에서 직접 도우를 발효하고 오븐으로 피자를 몇백 번씩 구워봤지만 ‘요리 초보’에게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좌절하던 임 대표는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한다. 스물일곱 살 인생의 첫 아르바이트였다. 평일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주방 보조로 일했다. 신분은 ‘동네 백수 형’으로 철저하게 감췄다. “당시 사수가 고등학교 3학년인 열아홉 살이었는데 1분이라도 늦게 출근 체크를 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혼났죠. 그동안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편하게 살았던 거죠. 최저 시급이 얼마인지, 몇 시간을 일해야 주휴수당이 나오는지 그때 다 배웠던 것 같아요.”
단순히 인생 경험만 쌓은 것은 아니었다. 임 대표는 대형 피자 가게에서 일하며 피자가 왜 비싼 음식인지를 깨달았다. 도우 반죽부터 토핑 전 처리, 오븐에 구워서 자르기, 박스 접기까지 모두 사람의 손을 거치는 탓에 공임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파악했다. 당시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저렴한 1인용 피자를 론칭하기 위해서는 제조 과정을 더 쉽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이제 실전이다. 가난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임 대표는 부모님과 당시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를 설득한 끝에 창업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지인들로부터 십시일반 모은 돈과 신용대출로 2000만 원을 겨우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 300만 원은 31만 ㎞를 뛴 중고 트럭을 사는 데 사용했고 나머지는 푸드트럭으로 개조하는 데 썼다. 첫 데뷔 무대는 보육원이었다. 영업 경험이 전무했던 탓에 당장 돈을 받고 팔 수는 없었다. 보육원의 협조를 받아 총 100인분을 아이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며 경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야시장에 서류를 냈다. 요리는 아직 초보지만 경영공학을 전공하고 광고 회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지원서 작성과 프레젠테이션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야시장에 입성한 고피자는 하루에 7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며 ‘야시장의 피자 맛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피자 1호점은 2017년 대치동에 마련한 한 평짜리 매장이었다. 피자를 햄버거처럼 빠르게 만들고 동선을 최대한 효율화하기 위해 임 대표는 9개월의 연구 끝에 인공지능(AI) 화덕 ‘고븐(Goven)’을 개발했다. 고븐은 1인 피자 최대 6개를 3분 안에 구울 수 있는 화덕이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경우 피자를 굽는 데 8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 시간을 단축시킨 것이다. 화덕은 온도가 높아 사람이 수동으로 피자를 돌려가며 익혀야 하는데 이를 자동화시켜 AI 화덕으로 불린다. 고피자는 고븐 외에 디지털 요소를 다수 접목시켰다. 한 예로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은 화덕에 장착된 카메라가 토핑의 정확도를 분석해 알려준다. 또 ‘고봇 스테이션’에 장착된 로봇은 직원이 토핑만 하면 피자를 굽고 커팅을 한 뒤 소스를 알아서 뿌려준다. 임 대표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핵심은 가맹점 관리”라며 “매장 수 확장과 완벽한 관리가 함께 가기 위해서는 가맹점주들의 노동을 덜어줄 수 있는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피자 매출의 절반은 해외에서 나온다. 고피자는 2017년 인도를 시작으로 싱가포르와 홍콩·인도네시아 등 5개국에 진출해 있다. 임 대표는 피자 가게를 차리기 전부터 인도 시장을 주목해왔다. 가처분소득이 낮아 자동차 평균 할부 개월이 100개월에 달할 만큼 ‘쪼개서 사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밀가루로 만든 난을 주식으로 하는 만큼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 피자 시장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인도의 봉쇄 정책이 계속되며 인도 법인의 한 달 매출이 100만 원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엔데믹 이후 인도 매출은 매월 전월 대비 6배씩 증가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가맹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가맹점주 전부가 교민이 아닌 현지인이라는 것도 강점이다. 고피자는 연말에 싱가포르 주유소에 입점한 뒤 내년 초를 목표로 ‘아시아의 관문’인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구역 식음료(F&B)에 입성할 예정이다. 올해는 해외에서만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임 대표는 2019년 포브스의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30인’에 선정됐으며 올해는 고피자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고성장 기업으로 꼽혔다. 임 대표의 최종 목표는 고피자를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다음으로 외국에 많이 알려진 한국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글로벌 브랜드인 맥도날드처럼 시스템을 구축해 기업가치 1조 원이 넘는 유니콘 외식 기업이 되는 것이 꿈이다. “피자의 매력은 도화지 같다는 거예요. 하얀 도우 위에 어떤 토핑을 올리느냐에 따라 피자가 달라지니까요. 정답이 없는 피자처럼 한계를 모르는 고피자를 기대해주세요.”
◇He is △1989년 서울 △2012년 싱가포르경영대(SMU) △2015년 KAIST 대학원 경영공학 석사 △2016년 한강공원 야시장 참가 △2017년 대치동 1호점 오픈 △2019년 인도 진출 및 포브스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리더 30인’ △2020년 국내외 매장 수 100개 돌파 △2022년 25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