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건설업계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 ‘신길중학교’

아파트 숲 사이에 옥상정원

성냥갑 학교의 틀 깬 생동감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신길중학교는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고층의 신축 아파트들과 대비된다.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신길중학교는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고층의 신축 아파트들과 대비된다.




높은 새 아파트들 사이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의 건축물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으레 학교라고 하면 밋밋한 직사각형 실루엣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은 건물이 발 디디고 있는 땅의 높낮이를 고려해 낮고 넓게 펼쳐진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서 있는 형태가 눈길을 끈다. 어떤 집은 삼각지붕에 빨간 벽돌벽이고, 또 다른 집은 평지붕에 흰색 벽이어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개성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동화 속 집들처럼 아담하고 포근해 보이는 이곳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뉴타운에 세워진 ‘신길중학교’다. 학교라는 공간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이 학교는 2021년 3월 개교해 아직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신생 학교이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학교공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례로 남을 곳이다.

학교가 터 잡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은 과거 ‘달동네’로 불리던 지역이었다. 오래된 연립과 다세대 주택이 소복이 모여 있고,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서민들의 삶을 대로변의 일터로 이어주던 신길동은 2005년 서울시의 제3차 뉴타운 후보지로 결정됐다. 이후 지난한 개발 과정을 거쳐 2015년부터 새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뉴타운 사업이 대부분의 구역에서 마무리된 지금의 신길동에는 내로라하는 브랜드를 단지명에 붙인 고층의 신축 아파트들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신길중학교에서는 집과 집이 서로 기대어 살았던 과거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학교를 설계한 건축가는 삭막한 고층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있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학교 주변의 장소적 특징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에 오히려 설계 방향에 대한 대안이나 고민은 없었다”며 “획일적이고 거대한 도시 스케일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이 ‘집’처럼 위압적이지 않고 작고 낮은 공간에서 친밀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계 의도를 설명했다.



그의 말 대로 신길중학교는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현장 심사일에 마주한 신길중학교는 중정 등이 있어 비가 오는 날이었음에도 내부 채광이 좋았으며, 학생들은 교실 바로 앞에 있는 옥상정원의 마당을 쉽게 드나들었다. 마치 마당을 끼고 있는 집처럼 교실 사이 사이에 조성된 작은 마당에는 자작나무나 대나무, 단풍나무 등이 심어져 있어 학생들이 언제든 사계절을 눈에 담고 또 느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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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옥상정원은 학교라는 공간이 내포한 억압과 규율의 이미지를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안전을 위해 사람 키보다 높은 철제 안전 울타리가 설치돼 있지만, 시야를 가로막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옥상정원이라는 구조적 특징상 낙상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에 안전에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며 “대신 이곳은 사각이 없어서 우려했던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전 울타리에 기대어 주변을 둘러봤을 때, 바로 밑의 층이나 아름답게 조성된 중정을 바라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또 울타리에는 학생들이 손수 만든 작품과 장식 등이 달려있어 학교 특유의 생기가 느껴졌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중학교 전경. 삼각지붕과 평지붕, 갈색벽과 흰색벽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최상층에는 옥상정원이 조성돼 있다.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중학교 전경. 삼각지붕과 평지붕, 갈색벽과 흰색벽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최상층에는 옥상정원이 조성돼 있다.


또 신길중학교는 위와 아래, 내부와 외부가 막혀 있지 않는 순환동선으로 설계돼 학교는 응당 폐쇄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도 깨뜨렸다. 이는 건물이 서 있는 대지의 단차를 활용한 설계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건물을 2, 3, 4층에 걸친 테라스 하우스처럼 배치했고 그 결과 학교 전체적인 외관이 야트막한 동네길에 집들과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내부에서 복도를 따라 이동할 경우 막힘없이 물 흐르듯 층과 층이 연결돼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건축가는 “신길중학교의 건축적 의의는 기존의 획일적인 학교 공간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 구조의 학교가 제안되었다는 점, 또 이러한 도전이 선뜻 받아 들여져 구현되었다는 것에 있다”며 “다양한 학교공간을 촉진하는 하나의 사례로서 기능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길중학교처럼 기존과 다른 모습으로 지어지는 건축물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한 우려 때문에 (건축주 등이) 사업 진행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라며 “하지만 신길중학교 설계과정에서 현안을 풀어가며 느낀 것은 건축주(서울특별시 남부교육지원청)가 진취적이고 전향적이었던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회상했다.

건축가가 시도한 ‘새로운 학교’는 신길중학교가 처음은 아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공항고등학교도 그가 평범한 학교와는 선을 긋고, 색다른 접근 방법과 설계 콘셉트로 구현한 학교다. 공항고등학교는 한 줄로 이어지는 복도와 그 옆에 딸린 교실로 이뤄진 1차원 선형구조 학교공간이 아니라 쇼핑몰처럼 개방적인 공간을 구성했다. 아트리움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유입되는 것도 특징이다. 건축가는 “신길중학교와 공항고등학교 이들 두 학교를 관통하는 설계의도는 학교공간 구조유형의 다양화”라며 “평범하지 않은 접근 방법과 설계로 구현한 학교에서 학생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건축가는 대한민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게 된 것에 대해 “매우 영광이고 과분한 상”이라며 “이 상은 몇 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높아지는 학교 건축에 대한 관심, 변화를 위한 각계 각층의 노력들, 그리고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결과물 등에 대해 격려하고 응원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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