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정치권·정부 압박에 비둘기파 소수의견까지…금리 인상 제동 걸리나 [조지원의 BOK리포트]

금리 결정 전 안팎으로 흔들리는 금통위

사문화 ‘열석발언’ 다시 하자는 주장 나와

연이은 빅스텝에 정부 불편 심기 내비쳤나

비둘기파 “금리 인상하되 과도하지 않아야”

추가 빅스텝 시사한 강성 매파도 1명 뿐

1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 모습. 연합뉴스1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 모습. 연합뉴스




24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 위기에 일치단결로 대응해왔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기준금리 인상 행보가 ‘가학적’이라며 10년째 사문화됐던 ‘열석발언(列席發言)’까지 들고나와 한은을 압박하고 있다. 금통위 내부에서도 경기 침체 우려에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당초 한은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결정을 지켜본 뒤 금리 인상 속도와 폭을 조절하겠다고 했지만 1~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리기도 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공급망 충격에 의한 인플레이션인데 금리 인상으로 수요측면에서만 대응하는 것은 가학적 금리 인상이 아닌가”라며 “한국은행법에 열석발언권이 있는데 (금융위) 부위원장이 금통위에 참석해 금융시장 전반적 상황을 고려해 (이런) 의견을 전달하는 게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그런 생각을 많은 분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감안해 조치하겠다”고 발언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열석발언은 한국은행법 91조에 근거하는 제도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차관 또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열석해 발언할 수 있다. 다만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경우엔 금융위 소관 사항에 한정해 열석발언을 할 수 있다. 법으로 정해놓은 열석발언 행사가 아무리 합법적이라도 이에 대한 언급 자체가 논란이 되는 것은 중앙은행 독립성을 크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열석 관련 규정은 1962년부터 한은법에 담겨 있었지만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98년 4월 시행된 6차 개정안 이후다. 당시 6차 개정안은 한은이 가지고 있던 은행 감독 기능을 떼어내는 대신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재무부 장관이 맡던 금융통화위원장을 한은 총재로 넘긴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한은을 견제하기 위해 ‘열석’을 ‘열석발언’으로 문구를 바꿔 넣고 정부의 경제정책과 상충된다고 판단하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했다. 이전까진 재무부 장관이 금통위 의장이기 때문에 차관의 열석은 참관 정도의 의미였으나 6차 개정안 시행 이후 실질적인 견제 수단이 된 것이다.

한국은행 앞. 연합뉴스한국은행 앞. 연합뉴스



그렇지만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의식해 열석발언은 제한적으로 활용됐다. 열석발언이 본격 도입된 이후로 1998년 4월 9일, 1999년 1월 7일과 1월 28일, 1999년 6월 3일 등 단 4차례만 이뤄졌다.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이명박 정부 때 부활해 2010~2013년 정부 인사가 46차례나 금통위에 참석했다. 이때도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 논란이 계속됐고 결국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는 동안 한 차례도 활용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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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그동안 열석발언과 재의요구가 중앙은행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부정적 입장을 수시로 피력했다. 통화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중앙은행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열 전 총재는 2019년 국회 참석해 “(열석발언은) 행사도 되지 않고 실효성은 없는데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간섭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며 “차라리 제도를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창용 총재도 올해 초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통화정책 결정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 행사나 간섭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한은은 이번 김 위원장의 열석발언 언급을 원론적 수준이지 실제로 하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도 수시로 “한은은 정부로부터 독립됐다”고 발언해온 만큼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열석발언 가능성을 시사한 것만으로도 급격한 금리 인상에 대한 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간접 전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금융 불안 등 금리 인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외부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여기에 두 명의 소수의견 금통위원마저 등장하면서 속도 조절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기준금리를 50bp 올린 10월 금통위에서 주상영·신성환 위원은 25bp만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1일 공개된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 “경기와 고용을 과도하게 수축시키지 않으면서 중기적 시계에서 근원물가 상승률을 2% 내외로 안정시키기 위한 기준금리의 상단은 3%대 초반 정도”라며 “그 수준에 도달한 후에는 인플레이션의 하락속도와 목표치로의 수렴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대응해야 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25bp 인상 의견을 낸 다른 금통위원 역시 “통화정책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그 정도는 과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라며 “자본유출, 환율 상승을 우려한 선제적 통화정책보다는 상황 전개에 따른 유연한 통화정책이 실물 경제나 물가 경로의 위험관리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10월 금통위서 50bp 인상 의견을 낸 매파(통화 긴축 선호) 금통위원 4명 중에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인 이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통위원 한 명은 긴축 가능성을 우려하며 향후 금리 인상 폭과 속도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고, 두 명은 국내외 성장과 물가 흐름과 금융 상황 등을 보고 결정하자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남은 한 명만 “기준금리 인상을 가속화해 정책 기조를 긴축적 수준으로 조기 전환해야 한다”라며 선제적 통화정책을 강조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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