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뉴삼성’ 비전 선포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이에 동반될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두고 재계와 증권가에 각종 시나리오가 오르내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삼성전자(005930)나 삼성물산(028260)을 인적 분할해 그룹 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안까지 제시하는 등 밑그림을 한층 구체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일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들은 이 회장 승진을 최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로 해석하고 있다”며 “삼성전자에 대한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의결권은 15%로 제한돼 있기에 회장 승진을 계기로 지주회사 전환 작업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회장이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고작 1.63%에 그친다. 이 회장은 대신 다른 총수 일가와 함께 31.63% 지분으로 지배구조 최정점 회사인 삼성물산을 소유하면서 삼성생명(032830)·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고 있다.
야당이 추진하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또 다른 변수로 꼽힌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총 자산의 3%에 해당하는 지분 외에 나머지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3%’의 기준이 취득원가가 아니라 시장가격으로 바뀔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처리해야 할 삼성전자 지분은 총 7.07%로 증가한다.
최 연구원은 앞으로 삼성이 취할 지배구조 개편 방식으로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보다는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필요 자금이 10조 4800억 원으로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 드는 최소 자금 68조 원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최 연구원은 인적 분할된 삼성전자 투자회사가 삼성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 10.22%를 인수하고 삼성물산은 삼성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투자회사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분할 후에는 현물 출자를 통해 ‘삼성물산→삼성전자 투자회사→삼성전자 사업회사’ 구조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 연구원은 “이 거래가 완료되면 삼성물산은 지주회사, 삼성전자 투자회사는 중간지주회사, 삼성전자 사업회사는 삼성물산의 손자회사가 된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가 아니라 삼성물산을 분할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등으로 구성된 사업지주회사와 삼성생명 등으로 이뤄진 금융 지주회사로 분할하는 방안이다. 금산분리 원칙에서 가장 자유로운 전략이다. 이 경우 이 회장은 총수 일가가 보유한 각 사 지분을 현물 출자해 지주사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외부 여건을 고려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서두르지 않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국정 농단 사태가 고조에 달한 2017년 4월 27일 지주회사 전환 포기를 한 차례 선언한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금융 계열사의 지분 매각 부담, 정치권의 규제 강화 움직임 등을 그 이유로 들면서 “항구적인 결정”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매주 진행 중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 1심 재판도 이 회장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기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기업 자금을 대규모로 재배치할 필요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승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총수 일가가 지분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율을 어떻게 30%까지 끌어올리느냐가 최대 관건”이라며 “현재로서는 삼성 입장에서 지배구조 개편이 전혀 급한 상황이 아니라서 자금 조달에 시간을 더 둘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 3개 사는 지배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0년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용역도 맡겼다. 이 회장은 여기서 나온 보고서를 기반으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