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휘발유 가격과 민심의 상관관계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美경제정책 성패와 큰 관계 없지만

휘발유값 하락땐 민주당 지지받고

올라가면 공화당 지지도 높아져

중간선거 표심 좌우할 최대 변수





어느 정당이 집권당인지와 휘발유 가격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휘발유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



이게 실없는 질문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 올해 휘발유 가격과 정당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는 일관되게 강력한 상호 관계를 보였다.

올해 초 휘발유가 갤런당 평균 5달러를 찍자 지지 여론이 공화당 쪽으로 쏠리면서 야당의 11월 중간선거 압승을 예상케 했다. 하지만 9월 중순 1달러 50센트가량 떨어지자 여론의 풍향이 바뀌었고 민주당의 경쟁력이 되살아났다.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세는 9월과 10월 초의 휘발유 가격 상승과 일치한다.

아마도 이런 상관관계는 허구일 수 있다. 당파 색이 강한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등 비슷한 기간에 여론에 영향을 줄 만한 다른 사건도 있었다. 게다가 이 문제를 연구해온 정치학자들은 휘발유 가격이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미미하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수십 년간 잠잠하던 물가 급등세에 미국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의 높직한 가격판에 큰 글자로 고시된 휘발유 가격은 유권자들에게 지금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끊임없이 일러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정치인들이 휘발유 가격을 자주 입에 올린다는 점이다. 공화당은 근원 개인소비지출 디플레이터에 관한 설명을 건너뛴 채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절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단 2달러였다”고 주장한다. 반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한동안 지속되다 잠시 주춤했던 물가 하락세가 재개됐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휘발유 가격에 관한 세 가지 중요한 사항을 짚어볼 최적의 시기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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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휘발유 가격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제시장에 공급되는 원유 가격인데 미국은 여기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물론 유럽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거의 완벽한 짝을 이루며 움직이는 게 정상이다.

원유 가격과 휘발유 가격이 트럼프의 임기 마지막 해에 이례적으로 낮았던 이유는 그가 어떤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세계경제가 성장을 멈추면서 원유 수요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원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원유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두려움에 일시적으로 가격이 치솟았다. 상당량의 러시아산 오일이 세계시장에 계속 공급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오일 가격은 다시 떨어졌다.

둘째, 소폭의 가격 변동은 늘 정유 시설의 기술적 문제에 의해 발생한다. 정유사는 원유에서 휘발유를 비롯한 파생상품을 뽑아내는 역할을 한다. 휘발유 가격의 단기 급등은 9월에 시작됐다. 지금은 이미 끝난 듯 보이는 단기 급등은 많은 국내 정유 시설들이 정비를 위해 가동을 중단한 데다 오하이오의 정유 시설에 화재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정책과는 무관하다.

마지막으로, 휘발유는 결코 비싸지 않다. 휘발유 가격과 근로자의 평균 시급 사이의 비율을 따져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이 비율은 2010년 초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휘발유 가격은 트럼프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 시절에 급락했다. 그러나 당시의 유가 하락은 세계시장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마도 휘발유 가격은 2010년 말의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긴 안목으로 보면 앞서 필자가 말했듯 현시점의 휘발유 가격은 실제로 비싼 게 아니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문제가 발생했던 정유 시설 가운데 일부가 가동을 재개함에 따라 휘발유 가격은 앞으로 몇 주 사이에 걸쳐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휘발유 가격과 바이든 행정부 정책의 성공 혹은 실패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거의 없다. 엄청난 이익을 얻은 정유사들을 정조준한 바이든의 압박이라든지, 전략비축유 추가 방출과 같은 조치가 유가를 낮추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이나 휘발유 생산과 관련한 국내 정유 시설의 기술적 문제는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결코 적절치 않다. 게다가 지금의 휘발유 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휘발유 가격은 중요한 선거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건 단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니라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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