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은 한때 ‘과학’으로 불렸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항상 4위 또는 그 언저리의 성적을 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좋은 의미일 수도 있지만 ‘4위 정도는 하지만 우승은 절대 못한다’는 조롱의 의미로 자주 사용됐다. 실제로 아스널은 무패 우승의 역사를 쓴 2003~2004시즌 이후 18시즌 연속으로 EPL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5년 전부터는 과학도 통하지 않았다. 우승은 못해도 최소 4위는 하던 팀이었는데 그 아래로 순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스널은 2016~2017시즌 5위를 기록한 뒤 6위, 5위, 8위, 8위, 5위로 부진을 거듭했다. 미국 데이터 전문 매체 파이브서티에이트가 올 7월에 예상한 아스널의 2022~2023시즌 순위도 5위였다. EPL 우승 확률은 2%로 1위 맨체스터 시티(46%)의 2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아스널의 행보는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8월 초 크리스털 팰리스와 개막전 2 대 0 완승을 시작으로 파죽의 5연승 행진을 달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첫 패배(1 대 3)를 당하기는 했지만 토트넘(3 대 1)과 리버풀(3 대 2)을 차례로 격파하는 등 6경기 무패(5승 1무)를 달리며 당당히 1위(승점 31·10승 1무 1패)에 올랐다. 2위 맨시티와 승점 2 차이다.
돌풍의 중심에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 지난달 리버풀전에서 2001년생 동갑내기 공격수 가브리엘 마르티넬리와 부카요 사카가 각각 1골과 2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마르티넬리는 팀 내 공동 최다 득점인 5골, 사카는 4골로 뒤를 잇고 있다. 이외에도 가브리엘 제주스(25·5골), 마틴 외데고르(24·4골) 등 아주 젊은 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아스널을 어린 팀으로 바꿔 놓은 것은 2019년 12월 부임한 미켈 아르테타(40) 감독이다. 윌리안(34·풀럼)과 다비드 루이스(35·플라멩구), 피에르-에므리크 오바메양(33·첼시) 등 나이든 선수들을 차례로 정리하고 유스 시스템에서 성장한 에디 은케티아(23), 에밀 스미스 로(22), 사카 등에게 기회를 줬다. 영입도 벤 화이트(25), 토마스 파티(19) 등 어린 선수 위주였다.
영국 스카이스포츠에 따르면 이번 시즌 아스널의 평균 연령은 24.61세로 EPL 20개 팀 중 가장 낮다.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리버풀(29.36세)과 거의 다섯 살 차이다. 첼시(28.82세), 토트넘(27세), 맨시티(27.27세)와도 차이가 크다.
미래를 내다본 투자가 올 시즌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아스널의 어린 공격 라인은 현재 리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라며 “아스널의 선수들은 성공을 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버풀과 첼시가 부진한 출발을 보이면서 이번 시즌 아스널이 맨시티의 주요 도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아스널이 다시 리그 정상에 오르기 위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19년 만의 우승을 기대했다.
어린 선수들의 타고난 재능과 의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대 교체를 강행한 감독의 뚝심, 구단의 절대적인 지지가 모여 지금의 아스널을 만들었다. 이들이 일으키는 돌풍은 과연 시즌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