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거래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래서 독특한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사람들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더라고요.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인연을 맺기도 하잖아요. 신기했어요, 처음 만난 사람을 믿는다는 게."
영화 <거래완료>(각본/감독 조경호, 제작 한국예술종합학교)에는 중고거래를 계기로 만나는 각기 다른 사연의 10명이 등장한다. 전직 야구선수와 야구광 꼬마,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과 재수생, 로커를 꿈꾸는 공무원과 로커, 사형수와 대학생 그리고 작가 지망생과 카페 사장까지. 한때 소중했던 물건을 내놓은 이들의 아쉬움과 꼭 필요했던 물건을 눈앞에서 마주한 이들의 설렘, 둘 사이 팽팽한 긴장감과 따스한 온기가 영화 내내 묻어난다. 주인의 손을 떠난 물건들은 두 번째 기회를 얻고 주인공들은 새로운 인연, 새로운 기회와 마주한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알려진 영화이지만 스케일은 블록버스터 못지않다. 전석호, 태인호, 조성하, 이원종 등 베테랑 배우들이 중심을 잡았다. 최예빈, 최희진, 채서은, 이규현, 이교형, 권일, 임승민, 엄서현 등 매력과 개성을 겸비한 신예 배우들이 빈틈없이 다채로운 채색을 더했다.
잠실야구장, 서울 야경, 술집, 밴드합주실, 카페 같은 로케이션들은 하나같이 멋있고 예쁘고 아름답다. 버튼만 누르면 잠에 빠지는 수면 유도기가 존재하는 환상적인 공간도 있다. 등장인물들이 직접 연주하고 부른 감성 짙은 OST도 여럿. 요즘처럼 부쩍 추워진 날씨에 제격인 힐링 스토리까지 갖췄다. 다섯 개의 물건을 둘러싼 예측불허의 모험은 지난달 극장 개봉을 거쳐 11월부터는 극장과 함께 IPTV와 VOD 서비스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개봉 즈음 만났던 전석호 배우는 다섯 개 스토리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거래완료>의 첫 번째 에피소드 주인공이다. 전직 야구선수 정광성(전석호)은 세상에 50벌 밖에 없다는 '쌍둥이 야구군단'의 유광 잠바를 판매하려 나섰다가 쌍둥이 군단 광팬인 초등학생 재하(임승민)를 만난다. 광성은 거래를 취소하려 하지만 재하는 같이 야구 경기를 봐달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둘은 같이 쌍둥이 군단을 응원하며 그들만의 우애를 다진다.
"영화 시나리오를 먼저 봤는데 좋았어요. 회사에서도 어떻게든 하고 싶어 했고요. 감독님을 만나보니 확신이 들었죠. 영화를 어떻게 만들 건지 플랜이 확실해 보였거든요. 잠실야구장을 빌리는 건 돈으로도 되는 게 아닌데 나중엔 촬영 끝내고도 오히려 시간이 남더라고요. 이게 되네, 싶었죠."
실제 경기가 진행 중인 잠실야구장에서의 연기는 전석호 배우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선 배우 본인은 '쌍둥이 군단'이 아닌 '곰 팀'의 팬이었다. 곰 팀이 안타를 칠 때마다 속으로는 기뻤지만 겉으로는 표정을 유지해야 했다. 또한 공수교대 총 아홉 번의 기회만이 주어진 야속한 상황 속에서 적시타 등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에 맞춰 그때그때 감정을 바꿔가며 연기를 해야 했다고.
"감독님의 자기 그림이 명확했기에 가능했죠. 선수들한테 안타 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잖아요. 현장에 변수가 있음을 충분히 설명해 주셨고 그런 고민들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나눠 신뢰가 갔어요. 정확한 목표 지점이 생기니까 장애는 없었습니다. 감정 변화의 어려움이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감정노동자니까."
중고거래는커녕 개인 SNS도 하지 않아왔다는 전석호 배우에게 <거래완료>의 소재는 낯설어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물건을 단순히 사고파는 행위를 넘어 물건을 팔거나 산 사람의 다음을 궁금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네 개의 에피소드가 별개로 존재하지만, 전석호 배우가 맡은 정광성은 영화 전체의 중심이 되는 사건 주인공이기도 하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정광성은 짧게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이름만 거론되기도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첫 에피소드에서 정광성이 마주쳤던 재하의 삼촌(태인호)과 이모(최예빈)의 사연이 펼쳐진다.
정광성은 네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사형수(조성하)와 뭔가 악연이 있는 듯하면서도 구체적으로는 어떤 사건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그것이 조경호 감독의 연출 의도이기도 했다. 일부러 연결을 느슨하게 해 사건보다는 사연을 지닌 인물에 집중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신기하게도 '따뜻하다', '좋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전석호 배우는 힘주어 말했다.
"우리 영화는 자꾸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요. 이해하고 싶다가도 궁금증이 생기거든요. 크게 대단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를 해결할 것도 아닌데 자꾸 그 사람에게 눈이 가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돼요. 야구, 수능, 음악, 오락기 그리고 문학전집까지. 영화를 흘러가듯 보는 게 아니라 보면서 무장해제되고 생각하고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어요.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가득한 영화입니다."
여러 변수로 촬영이 중단되기도 했었다. 배우들은 다른 촬영을 하면서도 <거래완료> 촬영이 잡히면 나오곤 했다고. 감독과 작품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쩌다 보니 전석호 배우는 조경호 감독과 분기 별로 가끔씩 만나 영화를 찍으며 어느새 1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낸 사이가 됐다.
"저는 다섯 이야기 중 5분의 1을 책임졌을 뿐이에요. 일련의 과정들,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과정들을 거쳐온 감독님들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몇 년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버텨서 작품을 만들어내잖아요. 되게 외로웠을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10명 배우 어떻게 다 모았대' 하시지만, 그 과정은 얼마나 치열했을까요."
전석호 배우는 현재 마동석 주연 영화 <범죄도시3>에 캐스팅돼 마석도 형사의 조력자 '김양호' 역으로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 "동석이 형한테 맞는 인물 중에 한 명"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영화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중이라고 그는 소감을 밝혔다. 그가 애정하는 연극 무대는 올해 일정이 마무리됐다.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영화든 드라마든, 어느 무대든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전석호 배우의 마음가짐인 듯했다. 반대로 쉴 때는 마음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곤 한다고. 사람들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따릉이 타고 즉흥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비가 올 때는 비 맞으며 뛰어다니고 싶은 마음도 든다고. 그에게서 진한 사람 향기가 났다.
"연극 무대도 워낙 좋아하고 연기하는 것 자체를 재밌어해요.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거래완료)가 데뷔작이겠죠. 그를 통해서 또 다른 곳에서 다른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요. 저 역시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어요. 같이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또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