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AI)를 잘 알고 쓰는 의사와 모르고 쓰는 의사에게 다른 세상이 올 것입니다.”
정명진 삼성서울병원 AI연구센터장(영상의학과 교수)이 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회 서경 바이오메디컬포럼’에서 “AI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는 게 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 교수는 “내비게이션을 쓴 지 10년가량 지난 지금은 운전자들이 길을 모른 채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방향으로만 따라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의료 영역에서는 확실히 AI가 의사를 대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AI를 쓰느냐, 안 쓰느냐가 아니라 AI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은 2017년 전략적 투자를 단행해 AI연구센터(MARS·Medical Ai Research center of SMC)를 설립했다. 현재 AI 분석 장비 20여 대와 박사급 3명을 포함해 23명의 연구원이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병원 내 의료진을 대상으로는 정기적으로 AI 심포지엄을 열어 관련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정 교수는 2019년부터 AI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정 교수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2016년 당시 AI가 영상의학과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의료계에서 화제가 됐었다”면서 “하지만 딥러닝 대상인 학습 데이터셋과 현실의 괴리로 다양한 오류가 발생하며 AI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절벽에 놓인 것은 의사가 아니라 오히려 AI”라고 덧붙였다.
의료 현장에서 지난 4~5년간 AI를 활용해본 결과 장점과 단점이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X레이 폐암 진단의 경우 AI가 학습하는 폐의 상태와 데이터 종류에 따라 실제와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 단순히 색깔을 달리했을 때 사물 자체를 다르게 인식하고 판단하는 일반화의 오류도 나타났다. 정 교수는 “AI가 진단한 사진을 다시 판독하느라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현재 수준의 AI 기술이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기술이 임상의사를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의료진을 돕는 내비게이션으로는 활용 가치가 충분하다”며 “AI를 잘 알고 써야 현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전했다. 심야 시간 등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부재할 때 영상 검사 결과를 먼저 판독해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업무 등에는 활용도가 높다는 것이다. 또 상대적으로 현장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한 의료진의 판단을 돕는 용도로도 활용될 수 있다. 실제 삼성서울병원이 욕창 관리에 AI를 적용한 결과 경험이 부족한 간호사들을 도울 수 있었다. 정 교수는 “욕창 환부를 사진으로 찍어 AI에 학습시킨 후 현장의 간호사가 보내온 사진을 판독하도록 해 드레싱 재료 추천까지 하는 데 성공했다”며 “전문의가 개입하지 않고도 환자의 상태에 따른 처방을 결정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병원에서 AI 활용이 가능한 또 다른 분야로 환자 진료가 아닌 관제·물류 등을 꼽았다. 삼성서울병원은 AI 기술 기반의 환자 수, 처방 건수 예측 모델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또 AI를 통해 병원 내 이동 경로를 학습한 로봇이 야간에 물류 이송을 담당하는 스마트 물류도 운영하고 있다. 정 교수는 “과거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 AI는 정신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며 “AI 활용 여부가 스마트 병원을 이끄는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