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참여 여부를 놓고 여당인 국민의힘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여당은 그동안 국정조사보다 경찰 수사가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말 동안 전국적인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국민 여론이 국정조사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13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3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과 만나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주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대한 대응, 예산 국회 대책 등에 대한 당내 의견 수렴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초·재선 의원들과도 차례로 만난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단독 처리 방침을 밝힌 만큼 국정조사를 피해가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판단에서다. 9일 야당이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서에는 민주당 의원들을 비롯해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 총 181명이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의 동의가 없어도 본회의 통과가 가능한 셈이다. 이에 당 내부에서는 민주당과 조사 범위와 대상·기간 등을 협상해 최대한 방어에 나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내년도 첫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는 점은 더욱 큰 부담이다. 이미 민주당이 정부 주요 사업 예산의 대대적 삭감을 예고한 만큼 야당의 국정조사 요청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예산안 심사가 더욱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예산안 지렛대론’도 나온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 핵심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 중진 의원은 “경찰 수사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국정조사 논의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여전히 국정조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여당은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상쇄시키기 위해 이태원 참사의 행정 체계상 문제점을 정치 쟁점화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의 장외 투쟁과 관련해 “신속한 수사 결과만이 야당이 그토록 원하고 있는 정치적 책임과 국가배상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며 “민주당은 국민과 유가족이 원하고 있는 참사의 실체적 원인과 진상 규명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여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도 야당과의 국정조사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여당에 ‘장관과 수석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야당을 향한 강경 대응을 주문한 만큼 주 원내대표가 야당과 국정조사 협의에 나서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