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하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로 경험하거나 본 모녀의 모습은 매체에서 보이는 다정함과 다르다고 생각해요.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거칠어 보일 수도 있지만, 맞춰가고 타협하기보다 완벽하게 찢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인물 간 관계도 앞뒤 없이 마구 돌진하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10일 개봉한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애증으로 뒤엉키는 모녀관계를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모녀의 마찰을 그 어떤 타협이나 화해의 여지도 없이 강력한 에너지로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다. 그러다 보니 감정의 파고도 세다.
서로 사랑 받기를 원했던 싱글맘 수경(양말복)과 딸 이정(임지호)은 사사건건 부딪히는데, 그 양상이 매번 사생결단의 기세다. 엄마는 홀로 딸을 키우느라 여자로서 삶을 희생당했다는 생각에 딸이 미워져서 폭력을 일삼고, 급발진을 핑계로 딸을 차로 치기까지 한다. 딸은 엄마에게 받아야 할 사랑을 못 받고 자라 위축된 삶을 살고 있다며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독립하지는 못한다. 여성 관객들을 중심으로 날것의 대사와 상황이 살아 있어서 실제로 주고받을 법한 대화라는 평가가 많다.
이 영화가 장편영화 데뷔작인 김세인 감독은 최근 화상으로 만난 자리에서 “좋든 좋지 않든 개봉 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갈 데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 2016년, 어린아이의 외로움을 주제로 작업해 오던 그는 이 감정에 몰입한 이유를 찾다가, 그 근원에 엄마가 있다는 걸 발견한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이 정서를 직면하기로 마음먹은 결과물이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다.
김 감독이 영화를 통해 화두를 던지고 싶었던 건 모성 신화, 정상가족 개념 등 가정을 둘러싼 갖은 통념이다. 한국 사회는 부성보다는 모성에 기대는 게 더 크고, 엄마도 딸에게 더 많은 책임과 정서적 역할을 기대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특히 수경은 전형적 어머니상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과거에 친딸의 졸업식을 깜박하고 못 갔는가 하면 첫 생리를 하는 딸을 한심하다며 때리는 사람이다. 반면 자신을 정상가족 범주 속에 넣으려는 남자친구 종열(양흥주)에게도 강하게 저항하며 여성으로서 자아를 부각한다. 그는 “사랑도 딱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데, 한국에서는 모성에 대한 하나의 상을 그린 다음에 이를 벗어난 사람이 이상하다, 자격이 없다고 내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이 양육자의 피양육자를 향한 가정폭력일 뿐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가정폭력이 맞다”면서도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적 맥락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본다”고 말했다.
“엉성한 사람들이 여러 일을 겪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마음이 간다”는 김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개인의 독립과 정신적 성장기이기도 하다. 엄마 속옷을 입으며 정서적으로 의존하던 이정은 자기 속옷을 사 입고 수경은 잡동사니가 쌓인 집에서 밥을 짓고 리코더를 분다. 특히 마지막에 수경이 리코더로 어설프게나마 ‘헝가리 무곡’ 전체를 연주하는 롱테이크가 인상적이다. 김 감독은 “수경이 뭔가 서툴지만 열심히 하고 있는 걸 영화 자체가 닫아버리고 싶지 않았다”고 돌아본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도 주목했다. 올 초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두 여성이 탯줄을 자르는 힘든 과정을 예리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 감독은 “다른 나라에서도 관객과의 대화 후 비슷한 경험 혹은 감정적인 부분에 공감한다는 분들이 많았다. 정도의 차이일 뿐 비슷한 관계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