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방한할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 회동을 가질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의 내용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빈 살만 왕세자는 이번 만남에서 자신이 주도하는 ‘네옴시티’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해 국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참여를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직후인 17일 한국을 찾는 빈 살만 왕세자가 이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등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차담회를 갖는다.
정확한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은 24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숙소인 롯데호텔에서 예정된 그룹 총수들과의 회동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재계 총수들은 빈 살만 왕세자와 총 사업비 5000억 달러(약 710조 원) 규모의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 관련 사업을 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네옴시티는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사회 변혁 프로젝트 ‘비전2030’의 일환이다. 이 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와의 개인적 친분을 앞세워 네옴시티 사업 수주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미 삼성물산·현대건설(000720)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옴시티 지하에 고속철도 터널을 뚫는 ‘더 라인’ 공사를 수주했다. 스마트시티에 삼성의 인공지능(AI)과 5세대(5G) 무선통신 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
삼성은 앞서 2019년 6월 빈 살만 왕세자의 직전 방한 때도 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을 재계 5대 총수 회동 장소로 제공한 바 있다. 이 회장은 3개월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직접 날아가 빈 살만 왕세자와 또 만나 스마트시티 등 광범위한 협력 방안을 공유했다.
최 회장의 경우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 대한 글로벌 투자를 빈 살만 왕세자와 논의할 수 있다. SK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만든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테라파워에 3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 또한 수소 등 미래 에너지 분야에 전방위적으로 투자하고 있어 두 기업 간 접점을 찾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SK지오센트릭의 경우 2015년 아람코의 화학 자회사인 사빅과 합작법인 SSNC를 설립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현대차·현대로템 등 계열사를 활용해 네옴시티에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강력한 의지로 그룹의 지향점을 완성체 업체에서 자율주행·AAM·로보틱스를 아우르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인프라 시설인 ‘UAM 버티포트’ 콘셉트 디자인을 공개한 것도 네옴시티 수주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네옴시티가 친환경 스마트시티를 지향하는 만큼 자율주행차·수소차·수소트램 등의 분야에서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의 수주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수소차 현지 사업 확대도 그룹 차원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회장은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동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대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태양광 사업을 하는 한화솔루션이 중동을 신규 시장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옴시티가 수소·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원만 100% 사용하도록 설계되는 만큼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선두 기업인 한화솔루션이 입지를 넓힐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네옴시티에서 이용될 UAM 분야도 한화그룹의 핵심 신(新)사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UAM 전문 기업인 영국 버티컬 에어로스페이스와 전기수직이착륙장치(eVTOL)용 전기식 작동기 공동 개발에 나섰다.
재계에서는 2019년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난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회동에 합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이번 빈 살만 왕세자 방한 기간 숙소를 제공하는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