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삼성전자 R&D투자 19조 ‘사상 최대’…“불황일수록 공격 투자”

■심층분석…시총 상위 20개사 연구개발비 살펴보니

올해 34조로 전년보다 22% 늘어

삼성전자 비용이 전체 55% 차지

배터리·IT·바이오서 높은 증가율

이재용 “세상에 없는 기술 만들자”

생산력 증강보단 테크 투자 확대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8월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8월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1년 만에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를 약 22%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만큼 기존 사업을 확대하기보다는 신(新)사업 투자에 집중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그룹 총수들이 ‘초격차 기술’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도 R&D 확대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피 시총 상위 20개 기업(공기업·금융사·지주사 제외)의 총 R&D 비용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33조 5497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7조 5599억 원)에 비해 21.7% 증가한 것이다. 집계 대상 기업은 삼성전자·LG에너지솔루션(373220)·SK하이닉스(000660)·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LG화학(051910)·삼성SDI(006400)·현대차(005380)·네이버·기아(000270)·셀트리온·카카오·포스코홀딩스·삼성물산·현대모비스·포스코케미칼·SK이노베이션·LG전자·고려아연·SK텔레콤·두산에너빌리티 등 총 20곳이다.





초격차 기술력을 유지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비중이 컸다. 삼성전자의 3분기 누적 R&D 비용은 18조 4556억 원으로 55%를 차지했다. 이는 3분기 누적 기준 역대 최대 수치로 전년 동기(16조 1857억 원) 대비 14%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에서 세계 1위인 대만 TSMC와 미세 공정 중심의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 다음으로 많은 R&D 비용을 투입한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3조 65억 원에서 3조 6369억 원으로 약 21%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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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경쟁이 치열한 배터리 산업의 증가세도 눈에 띈다. 중국 CATL에 이어 세계 2위 전기차용 배터리 기업인 LG엔솔은 올해 3분기까지 6340억 원을 R&D에 쏟아부으며 투자 규모를 40% 확대했다. 배터리·재활용 등 친환경 전환에 속도를 내는 SK이노베이션도 같은 기간 투자를 42% 늘렸다. 배터리와 함께 유망 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와 정보기술(IT) 분야도 R&D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카카오의 R&D 비용 증가율은 같은 기간 각각 159%, 42%를 기록했다.

이처럼 주요 대기업들이 업종을 가리지 않고 R&D에 집중하는 것은 차세대 기술과 신사업으로 다가올 경기 침체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배터리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 기업들이 올 하반기 들어 재고 급증으로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등 감산 체제로 돌입한 만큼 시설 확충보다는 R&D에 투자 비용을 쏟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코스피 시총 상위 20개사의 올 3분기 누적 시설 투자 규모는 총 65조 9242억 원으로 전년 동기(58조 3543억 원) 대비 13% 증가했다. R&D 투자 증가율(21.7%)보다 약 8.7%포인트 낮은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제조업 불황이 본격화하는 내년부터는 시설 투자가 더욱 둔화되고 R&D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룹 총수들이 기술 경영을 강조하는 것도 R&D 확대에 한몫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 8월 복권 이후 첫 공식 행보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을 택했다. 이 회장은 당시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6월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 위치한 LG화학 R&D 연구소를 방문해 “고객 경험을 혁신할 수 있는 기술 분야를 선도적으로 선정해가는 게 중요하다”며 “목표하는 이미지를 명확히 세우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R&D 투자 규모와 속도를 면밀히 검토해 실행해가자”고 당부했다.

재계에서는 국내 R&D 투자가 지속 확대되기 위해 장기적인 인재 양성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신규 R&D 센터를 수도권이나 해외 위주로 세우는 실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방에서는 연구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면서 “정부의 인재 육성 정책도 업종·지역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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