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실패도 삶의 일부로 인정해야죠"

■노준용 KAIST 실패연구소장

새로운 도전엔 필연적으로 뒤따라

게으름·부족함과 같은 취급 말길

되레 혁신·더 큰 성공으로의 과정

사회 안전망·복지체계 등 갖춰져야

노준용 실패연구소장노준용 실패연구소장




“사람들은 흔히 실패를 극복하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틀린 얘기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누군가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죠. 실패가 우리 삶의 일부인 이유입니다.”



노준용(51·사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실패연구소장은 대전광역시 KAIST 학술문화관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실패연구소는 지난해 6월 설립된 대학 정규 편제 기구로 대학 구성원들이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도전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실패와 관련한 데이터 수집, 공유, 뉴스레터 발간, 실패 포럼, 공모전 개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초대 책임자 자리에 오른 노 소장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전산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때 미국 할리우드에서 그래픽사이언티스트로 활동했고 2016년부터 4년간 KAIST 문화기술대학원장을 지냈다.



노 소장이 성공 대신 실패를 논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최대 과제는 성공과 발전이었다. 못살았던 시절 실패는 곧 패배였다. 선진국이라는 성공 사례를 따라가는 것이기에 용납될 수 없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따라가기만 해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 우리가 선도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고 창의력을 가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는 시도를 해야 하는데 실패는 필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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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패는 게으름 또는 부족함의 다른 말로 취급된다. 실패는 나쁜 것, 성공은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이 나오게 된 이유다. 게으름의 결과로 보고 벌을 주다 보니 실현 가능한 것에만 매달리는 부작용도 나온다. 노 소장은 “국가 연구개발(R&D)의 98%가 성공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그 결과 혁신과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없애버렸다”고 지적했다.

노준용 실패연구소장이 연구소 활동과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노준용 실패연구소장이 연구소 활동과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생각을 바꿔라’다. 얼마 전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이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13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을 구분한 후 10년간 연구 성과를 추적한 것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지원비를 못 받은 연구자들이 다른 그룹보다 더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노 소장은 “한 번 성공했다고 또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황과 조건이 달라지면 결과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역시 실패한 적이 있다. 학력고사 시절 우리나라에서 대학 진학에 세 번이나 실패했다. 입시 때마다 잠을 설친 탓이다. 결국 국내 대학을 포기하고 미국 유학에 도전했다. 결과는 합격.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이 못하는 게 아니라 잣대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노 소장은 “이제는 안되는 일이 있어도 평가 제도가 완벽하지 못한 것이지 내가 못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이것이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남과 공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괜찮아. 실패는 나쁜 게 아냐’ 하는 공감대를 이루면 실패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바뀐다. 노 소장은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단언한다. “우주발사체 나로호가 실패했을 때 연구비 삭감, 기관장 사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실패를 도덕적 해이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이래서는 더 큰 성공으로 가기 힘들죠. 신뢰는 더 큰 성공을 위한 밑거름입니다.”

회복 탄력성이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같은 맥락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은 상장까지 평균 세 번의 실패를 하지만 그 경험을 밑거름으로 나스닥에 입성할 수 있는 시스템의 지원을 받는다. 반면 우리는 한 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재기 불능이 되고 만다. 노 소장은 “한 번의 실패가 인생 실패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람들과 그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실패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회 안전망과 복지 체계는 보다 큰 성공으로 가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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