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말 자금 시장 안정을 위해 5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추가 자금 요청(캐피털콜)을 실시한다. 다음 달 국고채 발행 물량도 대폭 축소하고 한전채 등 공공기관 발행 채권도 규모를 줄이고 발행 시기를 분할하기로 했다. 은행의 자금 지원 여력 확대를 위해 예대율 규제를 추가로 완화하는 한편 보험사의 퇴직연금 지급을 위한 차입 한도도 한시적으로 풀어주기로 했다. 연말 단기자금 시장 안정에 총력전을 펼치는 셈이다.
정부는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시장 안정 추가 조치를 발표했다. 이번 추가 안정 조치는 국내 자금 시장 불안이 진정되고 있지만 단기자금 시장의 어려움이 남았고 연말까지 주요국의 금리·물가 발표와 국내 화물연대 파업 등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는 요인이 남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우선 정부는 지난달 초 3조 원 규모로 진행한 채안펀드의 1차 캐피털콜에 이어 5조 원 규모의 2차 캐피털콜을 추가로 진행한다. 금융회사의 부담 경감을 위해 다음 달부터 내년 1월까지 분할 출자 방식으로 추진된다. 현재 회사채의 경우 AA- 등급에서 A 등급으로, 기업어음(CP)은 A1 등급에서 A2 등급으로 추가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국토교통부와 건설사가 함께 신용 보강을 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번 시장 안정에는 한국은행의 역할이 강화됐다. 한은은 원활한 캐피털콜을 위해 83개 출자 금융회사에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2조 5000억 원의 유동성을 지원한다.
이는 2차 캐피털콜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공급된 유동성은 RP 매각 등 공개 시장에서 바로 흡수할 것”이라며 “담보를 받고 신용 위험이 없는 유동성 지원이기에 한은의 금리 인상 기조와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이와 함께 다음 달 국고채 발행 물량을 9조 5000억 원에서 3조 8000억 원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또 한전이나 가스공사 등 공공기관도 채권 발행 물량을 줄이고 시기도 분산시키는 한편 은행 대출 전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은 “한전채 금리가 5.99%까지 갔다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며 “한전이 물량을 낼 때마다 은행들이 받치고 있기 때문에 연말·연초까지 소화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퇴직연금 특별 계정에서 10%만 차입할 수 있도록 한 차입 한도도 한시적으로 풀어준다. 이 경우 보험사들은 보유 채권을 매각하지 않고도 적립금을 담보로 상당한 단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연말 만기가 집중된 퇴직연금 지급을 위해 보험사들이 시장에 대거 채권을 매도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채권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예대율(원화예수금 대비 원화대출금 비중)도 추가로 완화한다. 지난달 예대율 규제를 내년 4월 말까지 100%에서 105%로 늘린 데 이어 이번에는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 대출, 관광진흥개발기금 대출 등 총 11종류의 정부 자금을 재원으로 하는 대출을 예대율 산정 시 제외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약 8조 5045억 원 정도의 추가 자금 공급 여력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금 부족 우려가 심화되고 있는 카드·캐피털 등 여신전문금융사에 대한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내년 1분기까지 여전사의 원화 유동성 비율(유동성 부채 대비 유동성 자산)을 현재 100%에서 90%로 낮췄으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지급 보증 비율을 현행 30%에서 40%로 완화하기로 했다.
또 금융지주 자회사 간 신용공여 한도도 현재보다 10%포인트 확대하기로 했으며 채무보증을 이행하는 증권사에 대한 순자본비율(NCR) 위험값도 보다 명확하게 하기로 했다. 권 위원은 “지주회사가 대주주로서 자회사에 대해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채권·단기자금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인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서도 부동산 PF 보증 규모와 요건을 확대·완화하고 당초 내년 2월 예정이었던 5조 원 규모의 미분양 사업장에 대한 보증 신설도 내년 1월부터 앞당겨 시행하기로 했다.